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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04 기준 최신판



관찰사에게 제공되는 음식물을 관장하는 지방의 감영 기구.

개설

지방의 감영(監營)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은 원칙적으로 백성들이 내는 공물로 충당되었다. 그러나 17세기에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공납은 폐지되고 필요한 물품은 정부에서 지급한 대동 유치미(留置米)로 구매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각 감영에서는 관찰사에게 제공하는 음식 재료를 시중에서 구매하여 조달하였는데, 보선고는 그 업무를 관장하던 기구였다. 감영의 물품 구매는 감영 주변의 상권을 발달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동시에 유치미 외에 새로운 세금을 신설함으로써 백성들의 부담을 무겁게 하는 결과를 야기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현재 보선고가 설립되었던 곳으로 강원도감영, 평안도감영(『정조실록』 18년 6월 15일), 경상도감영, 전라도감영 등이 확인되었다. 이들의 설립 경위에 대해서는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점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또 이들의 설립 목적에 대해서는 『여지도서』「강원도 감영」편에 “보선고란 관찰사의 지공(支供)을 하는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보선고는 관찰사에게 제공되는 음식 재료를 조달할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 분명하다.

조직 및 담당 직무

물선감관(物膳監官)이 보선고의 최고 책임자였고, 실무자로 향리와 고자(庫子)가 있었다. 또 자금을 받고 물건을 사서 납품하는 상인층이 딸려 있었다. 감관이나 향리는 관아에서 수요가 발생하면 상인에게 자금과 물품 목록을 주고, 상인은 그것을 받아 시장에서 구매하여 납품하였다. 강원도감영의 경우 그 상인으로 도고차인(都庫差人)이라는 사람을 두었다. 감영에서 필요한 참기름과 들기름을 처음에는 감영 아래 주민들에게 돌아가면서 달마다 내도록 하였으나, 나중에는 보선고의 도고차인이 짜서 내도록 하였다.

변천

관찰사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데 드는 자금은 본래 유치미 가운데서 영수미(營需米)로 지급되는 쌀로 충당하였다. 그러나 영수미로는 부족하여 감영에서는 환곡이나 식리 등 대체 세원을 개발하여 보충하였다. 예를 들어 『만기요람』에는 평안감영의 보선고 재원으로 환곡 모곡(耗穀) 510석이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완영각고사례』에 의하면, 전라감영의 보선고에서는 매달 돈 83냥, 영수미 43석, 보역미(補役米) 59석, 황육가전 30냥, 참깨 1석을 관찰사뿐만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군관(軍官)·심약(審藥)·검률(檢律)의 반찬값으로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 『여지도서(輿地圖書)』
  • 『만기요람(萬機要覽)』
  • 『완영각고사례(完營各庫事例)』
  • 김덕진, 『조선 후기 지방 재정과 잡역세』, 국학자료원,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