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약(審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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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관찰사와 병마절도사의 의약사를 보좌하고 약재의 채취와 진상을 위해 각 도에 설치한 종9품의 지방 관원.

개설

심약(審藥)은 종9품의 관원으로서 의학 생도 중에서 선발하여 각 도에 파견했다. 관찰사와 병마절도사의 의약사를 보좌하고 재임한 도가 군현에서 공물로 지정되어 궁중에 바치는 약재의 채취와 건조, 진상을 감독하는 임무를 맡았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은 1433년에 『향약집성방』을 편찬함으로써 국내산 약재의 조사와 조달에 대한 연구를 마쳤다. 이를 바탕으로 전 군현에 공물과 진상으로 바쳐야 하는 약재를 배정했다. 그러나 약재는 진위를 판별하기가 어렵고, 약재마다 제철에 채취해서 적절한 방법으로 말리고 가공해야 약효를 보장할 수 있었다. 심약은 이런 필요에 의해 1467년(세조 13) 이전에 고려 때의 의학교유(醫學敎諭)를 계승하여 각 도에 의학교유 1직을 심약으로 개칭하여 종9품직으로 삼으면서 설치되었다(『세조실록』 13년 6월 6일).

담당직무

『경국대전』의 각 도별 정원은 경기도 1명, 충청도 2명, 경상도 3명, 전라도 3명, 황해도 1명, 강원도 1명, 함경도 3명, 평안도 2명이었다. 『대전통편』에서는 황해도가 2명이다. 경상도는 3명 중 2명은 좌도절제사도와 우도절제사도에 1명씩 배치했다. 충청도와 평안도는 1명을 절도사도에 두었다. 전라도는 1명은 절도사도에 1명은 제주에 두었다. 함경도는 남도와 북도에 나누어 배치했다.

심약은 의학 생도 중에서 선발했다. 『경국대전』의 취재(取才) 규정에 의하면 내의원과 전의감의 생도를 매년 4계절의 끝 달에 취재해서 우등자에게는 체아직, 3·4차례 수석한 자는 참상관을 주고 그다음 차례는 심약에 임명했다.

심약은 약재를 감별하는 임무 외에 군현별로 돌아다니며 『향약집성방』과 월령을 기준으로 약재를 채취하고 진품을 감정하며 약재 말리는 법을 교육하는 임무도 맡았다. 약재는 매달 보름에 봉진(奉進)하며 기한을 어기면 사유를 적어 보고해야 했다. 실수로 잘못된 약재를 올리면 심약과 군현 수령을 함께 파직했다.

심약은 관찰사와 병마절도사의 요속으로서 이들의 의약사를 보좌하였다. 관내 관원의 치료, 전염병의 치료, 사민자(徙民者)의 구호 임무도 수행했다. 세조대에 양성지는 지방에 의원이 부족하므로 심약을 군현별로 2명, 도호부에서 3명을 선발하여 내의원에서 교육하여 파견하자는 건의를 했으나 시행되지 않았다. 이는 지방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방관을 최소화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심약은 전시에는 군의로 차출되기도 했다. 심약을 관찰사와 절도사에게 나누어 파견하는 것은 심약이 평소에도 군의의 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심약은 의원직만이 아니라 검률(檢律)과 함께 도내 수령을 감찰하는 임무도 맡았다. 심약은 녹봉이 없고 지방의 어살세[漁箭稅]나 기타 지방민에게서 차출하는 비용으로 생계를 지원했다.

변천

『대전통편』에서 경기도심약은 폐지되고 황해도심약이 1명 증원되어 절도사도에 파견되었다. 이것은 정방산성(正方山城)과 같이 황해도의 수도 방위상의 중요성이 부각된 탓이라고 생각된다.

17세기 이후로 뇌물을 받고 의원이 아닌 사람을 심약에 임명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는 조선후기에 상업과 무역의 발달로 약재가 중요한 상품이 되면서 심약에게 수익 구조가 발생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함경도에서 심약의 폐단이 심했다. 이 지역의 특산이자 주요 무역 상품이기도 했던 인삼·녹용 등과 관련하여 삼상(蔘商)과 결탁하거나 상인과 짜고 이 지역의 진상품인 녹용, 사향 등의 생산과 유통에 심약이 개입해서 모리(謀利)를 취하기도 했다. 1866년에 함경도민이 심약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고 해서 함경도의 심약을 폐지했다(『고종실록』 3년 12월 23일). 그러나 다른 도의 심약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까지 유지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한충희, 『조선초기 정치제도와 정치』, 계명대학교출판부, 2006.
  • 김호, 「16세기 후반 경(京)·향(鄕)의 의료 환경: 『미암일기』를 중심으로」, 『대구사학』 64, 2001.
  • 허재혜, 「조선 후기 의관(醫官)의 경제적 활동 양상: 영·정조대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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