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률(檢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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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법률 조항 적용과 교육 등의 실무를 담당한 동반의 종9품 관원.

개설

형조에 2명, 병조와 한성부, 승정원과 사헌부, 의금부 등에 각 1명이 소속되었고, 지방에는 유수부 및 각 감영에 1명을 두어서 형사 사건의 해당 조문과 형벌 규정을 확인하고 율문(律文) 교육을 맡은 종9품 무록관(無祿官)이었다.

담당 직무

형사 사건이 일어날 경우 법률의 내용과 죄안(罪案)에 기록된 죄목을 비교하여 적절한 조문을 확인하여 형조 판서나 판의금부사, 관찰사 등 형사 사건의 처결 책임자에게 알리는 업무를 주로 담당하였다. 사형 집행 시에는 사형 현장에 입회하여 감시하는 일도 하였다.

변천

검률직은 일반적으로 형률 교육을 담당한 사율원(司律院) 출신이 임명되었다가 1466년(세조 12)에 대대적인 관제 정비 이후 사율원이 율학(律學)으로 바뀌면서, 율학 생도 중에서 차출하거나 율과(律科) 출신을 임명하였다. 중앙 관서로는 형조에 2명, 병조와 한성부, 승정원, 사헌부, 의금부에 각 1명씩 있었으며 형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형조에서 파견되었다. 지방에는 개성과 강화부에 각 1명, 경기도를 제외한 각 도에 1명씩 두었고 제주목에도 별도로 1명을 두었다.

연산군 때에 형조 소속 1명을 줄였고, 1756년(영조 32) 이후 수원·광주·춘천에 각 1명이 추가되었다. 정조 때에는 규장각에도 1명이 배치되어 초계문신의 강서와 제술 시험에서 꼴찌를 한 자에 대한 처벌과 규장각 소속 잡직관이 죄를 범한 경우 관련 내용을 자세히 따지고 살피는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