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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03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경상도의 도로망인 창락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의 경상북도 영천시 평은면 평은리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고려시대 성종에서 문종 연간에 역로(驛路)를 22역도(驛道)-525속역(屬驛) 체제로 정비할 때, 평은역(平恩驛)은 평구도(平丘道) 순안(順安)에 위치해 있었다. 조선전기 세종 때 전국의 역로를 44역도-537속역 체제로 정비한 데 이어, 세조 때 다시 41역도-543속역 체제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창락도(昌樂道)를 구성하는 역의 하나가 되었다. 이후 조선후기까지 존속했으나, 1896년(건양 1) 1월에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사(高麗史)』 참역(站驛) 조에 따르면 평은역은 고려시대 평구도에 속한 30개소의 역 가운데 하나로, 오늘날의 안동시에 해당하는 경상도 순안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다. 정확한 설치 시기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고려의 역제(驛制)가 22역도-525속역 체제로 정비된 995년(고려 성종 14)에서 1067년(고려 문종 21) 사이에 평구도에 소속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에 전국적으로 역도-역로 조직을 갖추는 과정에서, 창보역(昌保驛)·유동역(幽洞驛)·안교역(安郊驛) 등과 함께 창락도에 소속되었다.

조직 및 역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영천 편에 따르면, 평은역에는 대마(大馬) 2필,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10필 등 총 14필의 역마와, 역리(驛吏) 97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변천

조선전기 세종 연간에 전국적인 역로 조직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세조대에는 찰방(察訪)이 관할하는 역이 많고 역로가 멀어서, 찰방이 순시하거나 사객(使客)이 왕래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 결과 역로가 쇠퇴하는 등의 폐단이 나타났다. 그에 따라 1462년(세조 8)에는 각 도의 역참을 파하고 역로를 정비해 찰방과 역승(驛丞)을 두게 하였다. 그 과정에서 평은역은 창락역(昌樂驛)·죽동역(竹洞驛)·창보역 등 15개 역과 함께 창락도찰방의 관할이 되었다(『세조실록』 8년 8월 5일). 평은역은 그 뒤 조선후기까지 창락도에 속한 역으로 존속하다가, 1896년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평은역의 위치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영천군 동쪽 26리, 『여지도서』·『영천군읍지(永川郡邑誌)』에는 영천군 동쪽 30리 지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조선총독부 중추원 역원 조사표」를 기준으로 하면, 오늘날의 위치는 경상북도 영천시 평은면 평은리이다.

한편, 조선전기의 문신인 성현(成俔)의 『허백당집(虛白堂集)』에는 평은역에 관한 시가 실려 전한다. 또 조선중기의 학자인 주세붕(周世鵬)도 『무릉잡고(武陵雜稿)』에 평은역에 관한 시를 남겼다.

참고문헌

  • 『여지도서(輿地圖書)』
  • 『영남역지(嶺南驛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영천군읍지(永川郡邑誌)』
  • 『무릉잡고(武陵雜稿)』
  • 『허백당집(虛白堂集)』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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