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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41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경상도 지역의 역도 중 하나인 유곡도에 속한 역으로, 오늘날의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에 위치해 있었음.

개설

낙평역(洛平驛)은 조선 세조대 전국의 역로 체제가 정비되는 시기에 상주 지역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경상도 지역의 역도(驛道)유곡도(幽谷道)의 속역으로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낙평역의 정확한 설치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세조 때 경상도 지역의 역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경상도 지역의 역도와 속역 내역에는 그 명칭이 보이지 않지만, 세조 연간인 1457년(세조 3), 1459년(세조 5), 1462년(세조 8)에 각각 역로 개편과 관련된 기사에 낙평역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직 및 역할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 상주목 조에 따르면, 당시 낙평역에는 역리(驛吏) 42명, 역노(驛奴) 47명, 역비(驛婢) 20명과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3필 등 총 5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변천

1457년 4월에 경상도관찰사가 상주의 용산역(龍山驛)을 낙평역에 통합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병조에서 각 역의 거리가 균평(均平)하지 못하다는 점을 들어 반대함에 따라 낙평역과 용산역의 통합은 무산되었다(『세조실록』 3년 4월 28일). 1458년 낙평역의 사객(使客) 내왕이 잦고 물건의 운반이 끊이지 않아 역이 점점 피폐해진다는 병조의 건의에 따라 용산역과 상평역(常平驛)을 낙평역에 통합하였다(『세조실록』 5년 7월 28일).

1462년(세조 8)에는 찰방(察訪)이 관할하는 역이 많고 길이 멀어 역로가 조잔(凋殘)해지고 찰방이 순시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에 따라 역로를 개편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낙평역은 유곡도에 소속되어 유곡도찰방의 관할이 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전기의 역참 제도가 완비된 『경국대전(經國大典)』 체제에서도 낙평역은 유곡도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그 뒤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오늘날의 행정 구역으로는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청하리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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