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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1:23 기준 최신판



왕실의 제향에 올리는 깨끗한 물.

개설

본래 보름달이 떴을 때 생긴 이슬을 음감(陰鑑)으로 받은 물을 가리킨다. 음감은 처음에 조개껍데기를 사용하다가 유기로 그 모양을 만들어서 사용했다. 명수(明水)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자 정화수로 대신하였다.

만드는 법

명수를 만드는 법에 대한 기록은 없다. 민간에서처럼 첫새벽에 길은 맑고 깨끗한 우물물을 항아리에 담아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원 및 용도

『예기(禮記)』에서는 “단술[酒醴]이 맛이 좋긴 하지만, 제사 때는 현주(玄酒)와 명수와 같은 물을 가장 으뜸으로 여겼다. 물이 모든 맛의 근본임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고 했다. 현주는 명수를 다르게 부르는 말이다. 그래서 제사에는 술보다 명수를 더 높은 제물로 여겼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의하면 국사(國祀)와 국직(國稷)에는 각각 큰 술잔인 대준(大尊)이 2개 차려지는데, 하나에는 명수를 담고, 다른 하나에는 술의 한 종류인 예제(醴齊)를 담는다. 짐승 머리 모양의 귀가 양쪽에 달려 있는 저준(著尊)도 2개 차려지는데, 하나에는 명수를 담고, 다른 하나에는 술의 한 종류인 앙제(盎齊)를 담는다. 산과 구름 모양을 겉에 새긴 동(銅)으로 만든 술 항아리인 산뢰(山罍)도 2개 차려지는데, 하나에는 현주를 담고, 다른 하나에는 청주(淸酒)를 담는다.

숙종 때 종묘의 제향에 올리는 제물을 문헌에만 근거하지 말고 실제로 마련할 수 있는 것으로 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이때 명수는 월중(月中)에서 음감으로 취한 것이라 하지만, 『국조오례의』에서 “음감수(陰鑑水)가 없으면 정화수로 대용한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명수를 정화수로 대신할 수 있다고 보았다(『숙종실록』 43년 6월 21일).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만물문(萬物門)」에서 『주례(周禮)』에서 언급한 명수에 대해 설명했다. “사훤씨(司烜氏)의 직책은 부수(夫遂)로서 해에서 깨끗한 불을 구하고 달에서 깨끗한 물을 구하고, 제사에 쓰이는 명자(明齍)·명촉(明觸)·명수를 공급한다.” 이익은 옛 사람이 밥을 다 먹은 후에 반드시 입을 3번씩 가셨는데, 제사 때에도 이런 예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이익이 살았던 시대에는 제사에서 명수를 별도로 담지 않고 빈 그릇만을 올린다고 하였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첫새벽에 길은 맑고 깨끗한 우물물인 정화수는 민간에서 사용한 명수이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성호사설(星湖僿說)』
  • 『예기(禮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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