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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0:11 기준 최신판



오행성 중 하나로 태양과 가장 가까운 행성.

개설

오행성은 고대 천문학에서 다섯 행성으로 꼽던 세성(歲星)·형혹(熒惑)·진성(鎭星)·태백(太白)·진성(辰星)을 말한다. 이 각각은 춘추전국시대 후기에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오행(五行) 사상이 발달하며 목성·화성·토성·금성·수성으로 이름이 변하였다. 오행은 또한 다섯 방위[五方]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각각 동쪽·남쪽·중앙·서쪽·북쪽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행성 가운데 다섯 번째 행성에 해당하는 수성은 고대에 진성(辰星)이라 불렀으며, 북쪽을 의미한다.

내용 및 특징

수성은 태양에 가장 가까운 행성으로 태양과의 각거리가 28°를 넘지 않고, 공전주기가 87.97일, 회합주기가 115.88일인 행성이다. 겉보기 등급이 -2.3등급에서 5.7등급 사이로 변한다. 서양에서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발 빠른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의 이름을 따서 머큐리(Mercury)라 이름 지었다. 실제로 수성의 움직임은 매우 빨라서 보름 만에 특이한 곡선을 그리는데, 태양의 가장 동쪽에서 가장 서쪽으로 이동하는 평균 속도가 초속 47.36㎞로 태양계 행성 중 가장 빠르다. 항상 태양에 근접하여 있어 보기가 어렵고, 일출 전 2시간과 일몰 후 2시간 사이에서만 관측되며, 한밤중에는 볼 수가 없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수성 관련 기록은 40여 건 보인다. 예를 들어, 수성이 금성을 범하였다는 성범(星犯) 현상이 기록되었다(『태종실록』 14년 11월 27일). 여기서 범하였다[犯]는 것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관상감에서 보고한 내용에 의하면, 밤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혜성이 보이지 않았다가 4경 즈음에 태미원(太微垣) 서쪽 담장[西垣]의 제2성과 제3성 사이에서 혜성이 나타났고, 5경 말에는 수성이 동방에 나타났다고 하였다(『성종실록』 21년 12월 4일). 수성은 태양에 근접한 행성이어서 일출 전 동방과 일몰 후 서방에서 관측 가능한데, 이때의 기록이 해가 뜨기 전 2시간 동안인 5경에 동쪽 하늘에서 수성을 관측했다고 하여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태백성이 낮에 나타났고, 초저녁에 수성이 서방에 나타났다는 기록도 있다(『성종실록』 22년 2월 8일). 이 기록 역시 일몰 후 서쪽 하늘에서 수성이 관측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명종 때의 여러 수성 관측 기록들은 밤에 수성이 서방에 나타났다거나(『명종실록』 11년 2월 12일), 밤에 수성이 동방에 나타났다고 하는 등(『명종실록』 13년 10월 25일) 구체적 시각 표시 없이 막연히 밤이라고 시간을 묘사하고 있다. 서방에서 관측된 것은 초저녁이고, 동방에서 보인 것은 새벽이라는 통상적인 기록에 비추어 시각을 굳이 표시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된다.

오행성의 취합(聚合) 현상은 제각기 공전주기가 다른 다섯 개의 행성이 모두 일정한 범위의 각도 내에서 동시에 관측되는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오행성은 하늘의 정령(政令)을 주도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오행성이 한날 한곳에 동시에 모였다는 것은 매우 특이하고 커다란 우주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명종 때 기록을 보면, 밤에 수성이 술지(戌地)에 나타났으며 오행성이 모두 서방에 나타났다고 하였다(『명종실록』 19년 5월 4일). 술지는 서북방을 뜻하므로 오행성이 여름 음력 5월 4일 초저녁에 서북방 하늘에서 모두 관측되었다고 할 수 있다. 행성들은 황도(黃道) 궤도를 따라 운행하므로 남쪽 하늘의 동서 방향까지만 관측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서북방이라고 말한 것은 서쪽으로 아주 치우쳤다는 의미로 보인다. 또 북반구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수성의 관측 최적기는 최대 이각(離角)이 되는 시기와 천구 상 황도의 기울기가 커지는 봄철 초저녁과 가을철 새벽녘이 서로 맞물리는 시점이 된다. 『조선왕조실록』의 관측 기록들은 대체적으로 이 시기와 부합한다. 명종 때의 다른 기록을 보면, 매상(昧爽) 시각에 수성이 동방에 출현하였다고 기록하였다(『명종실록』 16년 9월 8일)). 여기서 매상은 새벽 동트기 전 아직 어두운 시각을 표현한 말이다.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수성이 관측되는 시기가 음력 9월 8일이니 이 기록 역시 우리나라 관측 최적기와 일치하고 있다.

효종 때에는 관상감(觀象監)이 건의하여 동지사(冬至使)를 보낼 때 일관(日官)도 동지사로 보내 청나라의 신력(新曆)인 시헌력(時憲曆)을 배우게 하자고 건의하였다(『효종실록』 3년 9월 4일). 다음해부터는 시헌력을 사용하려고 하는데, 칠정(七政) 곧 일월과 오행성의 역법은 미처 배우지 못하였으므로, 일과(日課)는 신법을 쓰고 칠정은 구법인 대통력(大統曆)을 쓰면 상충하는 일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 최근 월식을 관측할 때 수성과 목성 두 행성을 아울러 관측하였더니 구법과는 맞지 않고 신법에는 맞았으니, 이미 그른 것을 알고서 그대로 쓸 수는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동지사가 갈 때에 일관을 함께 보내어 시헌력을 마저 배워 오면 한꺼번에 역산(曆算)을 개수(改修)할 수 있기를 요청하였다. 이로 보아 수성과 목성의 관측을 구법인 대통력과 신법인 시헌력으로 각각 실험하였더니 신법이 더 정확하였지만 시헌력의 오행성 측후법은 아직 알지 못하므로 이번에 꼭 배워오도록 하여 우리 관상감의 역산 능력을 높여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다. 시헌력을 배웠으나 여전히 오행성의 계산법을 온전히 해독하지 못하였던 까닭에 이를 다시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지만 시헌력을 다 배우지 못한 채 1653년(효종 4) 조선에서도 시헌력으로의 개력을 단행하였고, 이듬해 1654년부터는 모든 역산법을 신력인 시헌력에 의해서 추산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
  •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 『한서(漢書)』 「천문지(天文志)」
  • 『여씨춘추(呂氏春秋)』
  • 『회남자(淮南子)』
  • 『천문류초(天文類抄)』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김일권, 『(동양 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김일권,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고구려 하늘에 새긴 천공의 유토피아』, 사계절, 2008.
  • 김일권,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고대부터 조선까지 한국 별자리와 천문 문화사』, 고즈윈,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