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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금) 01:40 판




총론

[1612년(광해군 4)~ 1693년(숙종 19) = 82]. 조선 후기 인조~숙종 때 활동한 문신. 승지(承旨)를 지냈다. 자는 여필(汝弼)이고, 호는 돈우당(遯愚堂)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거주지는 예천(醴泉)이다. 아버지는 도사(都事)박영(朴瑛)이며, 어머니 이씨(李氏)는 이영문(李榮門)의 딸이다. 박령(朴玲)에게 양자로 갔는데, 양어머니 권씨(權氏)는 권죽용(權竹龍)의 딸이다.

인조~숙종 시대 활동

1642년(인조 20)에 진사(進士)가 되었다.

1651년(효종 2)에 식년(式年) 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676년(숙종 2) 6월 사헌부(司憲府)장령(掌令)이 되고, 9월에 다시 사헌부 장령이 되었다가 12월 사간원(司諫院)헌납(獻納)이 되었다. 1677년(숙종 3) 1월 사헌부 장령이 되었는데, 3월 다시 사헌부 장령이 되었다. 1678년(숙종 4) 1월 다시 사헌부 장령이 되었는데, 궐내의 기강이 문란한 사실을 들어 소를 올렸다. 그 해 2월 사헌부 집의(執義)가 되었는데, 3월 다시 사헌부 집의가 되었고, 7월 사간원 사간(司諫)이 되었으며, 11월 사헌부 집의가 되었다. 1679년(숙종 5) 1월 다시 사간원 사간이 되었다. 1689년(숙종 15) 공조 참의(參議)가 되었고, 1690년(숙종 16) 예조 참의가 되었으며, 그 뒤 승지가 되었다. 1691년(숙종 17) 1월 그의 나이가 80세가 되었으므로 가자(加資) 되었다. 그는 성품이 청렴하며 사심이 전혀 없어 높은 벼슬을 지냈는데도 가산이 별로 없었으며 사는 집마저도 비바람을 겨우 막을 정도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한국인(韓國人)의 족보(族譜)』
  • 『국조방목(國朝榜目)』
  • 「임오 식년 사마방목(壬午式年司馬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