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설(朴廷薛)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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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박정설 |
한글표제 | 박정설 |
한자표제 | 朴廷薛 |
분야 | 정치·행정가/관료/문신 |
유형 | 인물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후기 |
왕대 | 인조~숙종 |
집필자 | 박은화 |
자 | 여필(汝弼) |
호 | 돈우당(遯愚堂) |
출신 | 양반 |
성별 | 남자 |
출생 | 1612년(광해군 4) |
사망 | 1693년(숙종 19) |
본관 | 함양(咸陽) |
주거지 | 예천(醴泉) |
증조부 | 박포(朴苞) |
조부 | 박수경(朴守敬) |
부 | (생부)박영(朴瑛) (양부)박령(朴玲) |
모_외조 | (친모)이씨(李氏): 이영문(李榮門)의 딸 (양모)권씨(權氏): 권죽용(權竹龍)의 딸 |
형제 | (형)박정협(朴廷莢), 박정시(朴廷蓍), 박정규(朴廷葵), 박정화(朴廷華)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박정설(朴廷薛) |
총론
[1612년(광해군 4)~ 1693년(숙종 19) = 82]. 조선 후기 인조~숙종 때 활동한 문신. 승지(承旨)를 지냈다. 자는 여필(汝弼)이고, 호는 돈우당(遯愚堂)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거주지는 예천(醴泉)이다. 아버지는 도사(都事)박영(朴瑛)이며, 어머니 이씨(李氏)는 이영문(李榮門)의 딸이다. 박령(朴玲)에게 양자로 갔는데, 양어머니 권씨(權氏)는 권죽용(權竹龍)의 딸이다.
인조~숙종 시대 활동
1642년(인조 20)에 진사(進士)가 되었다.
1651년(효종 2)에 식년(式年) 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676년(숙종 2) 6월 사헌부(司憲府)장령(掌令)이 되고, 9월에 다시 사헌부 장령이 되었다가 12월 사간원(司諫院)헌납(獻納)이 되었다. 1677년(숙종 3) 1월 사헌부 장령이 되었는데, 3월 다시 사헌부 장령이 되었다. 1678년(숙종 4) 1월 다시 사헌부 장령이 되었는데, 궐내의 기강이 문란한 사실을 들어 소를 올렸다. 그 해 2월 사헌부 집의(執義)가 되었는데, 3월 다시 사헌부 집의가 되었고, 7월 사간원 사간(司諫)이 되었으며, 11월 사헌부 집의가 되었다. 1679년(숙종 5) 1월 다시 사간원 사간이 되었다. 1689년(숙종 15) 공조 참의(參議)가 되었고, 1690년(숙종 16) 예조 참의가 되었으며, 그 뒤 승지가 되었다. 1691년(숙종 17) 1월 그의 나이가 80세가 되었으므로 가자(加資) 되었다. 그는 성품이 청렴하며 사심이 전혀 없어 높은 벼슬을 지냈는데도 가산이 별로 없었으며 사는 집마저도 비바람을 겨우 막을 정도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한국인(韓國人)의 족보(族譜)』
- 『국조방목(國朝榜目)』
- 「임오 식년 사마방목(壬午式年司馬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