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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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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예장 |
한글표제 | 예장 |
한자표제 | 禮葬 |
관련어 | 귀후서(歸厚署), 예장도감(禮葬都監), 증시(贈諡), 치부(致賻) |
분야 | 왕실/왕실의례/흉례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강제훈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예장(禮葬)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6년 10월 25일 |
종친, 공신 및 1품 이상을 지낸 문무관의 사망 시에 국가에서 예를 갖추어 장례를 지내주는 것.
내용
예장은 『고려사(高麗史)』 「예지(禮志)」에서부터 그 용례가 확인되며, 조선시대 들어서도 국초부터 그 용례가 빈번히 확인된다. 문무관에 대한 예장 규정이 정비된 것은 1405년(태종 5)이었는데, 종1품 이상은 예장(禮葬)과 증시(贈諡)하고, 정2품은 증시·치부(致賻)하고, 종2품은 치부만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공신은 당연히 예장의 대상이었고, 관품이 모자라더라도 국가에 공이 있으면 왕의 명령에 의해 예장을 내려주기로 하였다. 종친의 경우는 왕비의 부모, 빈(嬪), 귀인(貴人), 대군, 왕자군, 왕자군의 부인, 공주, 옹주, 의빈(儀賓), 종2품 이상 종친 등이 예장의 대상이었다.
용례
本國於大臣之卒 應禮葬者則立造墓禮葬二都監 臨時備辦諸事 事畢卽罷 曾無典守者 故車輿儀物凡未易猝辦之具 竝棄而不收 忽有禮葬 輒更新造 功費不貲 乞依古制 將上項二都監 合稱禮葬都監 凡喪葬之具 悉令掌之 常置不罷 若遇勳親大臣之卒 造墓禮葬等事 隨例應辦 事畢後 其合用物件 收而藏之 以備後用(『세종실록』 6년 10월 25일)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