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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2 기준 최신판



중앙 기관의 회계 장부에 기록한 것 이외에 따로 마련한 물자.

개설

왕조 정부의 정책으로 재원을 확보하여 회계에 포함시킨 것을 ‘회내(會內)’라고 하고, 지방관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것을 ‘회외(會外)’라고 하였다(『현종개수실록』 5년 6월 23일). 회외라는 용어의 의미는 ‘지방의 감영이나 고을 혹은 각 관청에서 사사로이 받아들여 공용(公用)에 보태는 것’이라는 의미의 별비(別備)와 비슷하였다. 원칙적으로 회외와 별비는 정부에서 간여하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지방관이 중앙 재정과 지방 재정인 회외를 운용할 때 서로 섞일 것을 염려하여, 회외는 창고를 따로 세워서 사용하도록 권장하였다.

내용 및 특징

회외라는 용어는 『선조실록』에 처음 나타나는데 호조(戶曹) 등 중앙 기관의 재정에 포함된 것이 아닌 지방관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곡식이나 물자였다. 경상도의 통영곡을 설명하면서 삼남 지역의 군향곡(軍餉穀) 중에 회부(會付)와 회외의 명칭은 만력(萬曆) 연간에 만들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 중에 군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공물을 쌀로 걷는다거나 공명첩(空名帖)을 발급하여 곡물을 확보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으로 확보하여 회계에 포함시킨 것을 회내라고 하고, 지방관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것을 회외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회외는 별비라는 단어와 의미가 비슷한데, 본래 별비란 각 지방에서 관용(官用)을 절약하거나 수령의 봉급을 덜어서 곡식이나 물품을 마련한 것을 말하였다. 이 별비는 사고(私庫)에 보관하였는데, 사고는 지방관이 재임 중에 활용할 수 있는 관비(官備)의 사물고(私物庫)를 의미하며, 전곡(錢穀), 그릇, 영읍(營邑)에서 소요되는 공물 등 각종 재화를 보관하던 곳이었다. 이 사고에 보관된 물자는 지방관이 교체될 때 후임자에게 기록하여 넘겨주도록 되어 있는 지방 재정이었다. 17세기 전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이후 부족한 국가 재정을 보충하기 위하여 별비를 중앙으로 이전하고 별비를 마련한 수령을 표창하는 사례가 있었다.

원칙적으로 회외와 별비는 왕조 정부에서 간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는 환곡에서 호조의 환곡을 ‘원회(元會)’라 하고, 감영·병영·수영의 환곡을 ‘별회(別會)’라 부르며 구분하였던 것과 같은 원리였다(『현종개수실록』 13년 10월 24일). 한편 정부에서는 지방관이 중앙 재정과 지방 재정인 회외를 운용할 때 서로 섞일 것을 염려하여, 회외는 창고를 따로 세워서 사용하도록 권장하기도 하였다.

변천

조선후기의 환곡 운영에서도 회외곡이 존재하였다. 통영곡은 회부곡(會付穀) 혹은 회내곡(會內穀)과 회외곡(會外穀)으로 구분되었다(『광해군일기』 11년 11월 13일). 회부곡은 그 관리를 호조에서 하였고, 회외곡은 통영에서 하였다. 회부곡이 먼저 만들어졌고, 통영의 경비가 부족하자 추후에 회외곡을 창설한 것이었다. 회부곡과 회외곡은 운영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다. 회부곡은 절반은 창고에 두고 절반만을 분급하는 반류반분(半留半分)의 형식으로 운영되었고, 회외곡은 전액은 분급하는 진분(盡分)의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회부곡은 호조와 중앙 각 기관의 회계에 편입된 것이며, 회외곡은 통영이 독자적인 회계 운영을 주관한 환곡이었다. 통영의 관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비 지출 때문에 회외곡은 중앙 재정에 이관되지 않았던 것 같다.

황해도에는 관향곡(管餉穀)과 관향회외곡(管餉會外穀)이 있었다. 또한 칙수곡(勅需穀)과 칙수회외곡(勅需會外穀)이 있었다. 이런 회외곡은 관향곡 혹은 칙수곡만을 가지고는 비용 조달을 충분히 할 수 없게 되자 별도의 환곡을 창설하여 비용을 조달하기 위하여 창설되었다. 회외곡은 부족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었으므로 보유 곡물 전부를 분급하는 진분으로 운영되었다. 평안도에는 각 고을에 회외곡이 존재하는데 각 지역의 비용 조달을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참고문헌

  • 『곡총편고(穀總編攷)』
  • 문용식, 「조선 후기 수령자비곡의 설치」, 『조선시대사학보』 9, 1999.
  • 송찬식, 「이조시대 환상취모보용고」, 『역사학보』 27, 1965.
  • 조세열, 「16세기 환자제 운영의 추이」, 『역사연구』 6,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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