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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백관·왕비의 의례복의 부속품 중 하나인 넓은 띠. | 왕·백관·왕비의 의례복의 부속품 중 하나인 넓은 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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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0:55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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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대대 |
한글표제 | 대대 |
한자표제 | 大帶 |
관련어 | 반대(襻帶), 신(紳), 조대(條帶), 혁대(革帶) |
분야 | 생활·풍속/의생활/대 |
유형 | 의복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최은수 |
용도 | 관복용, 예복용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대대(大帶)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영조실록』 43년 9월 19일, 『영조실록』 5년 1월 17일, 『광해군일기』 1년 3월 18일, 『숙종실록』 39년 5월 5일, 『순조실록부록』 12년 1월 26일, 『태종실록』 16년 3월 30일 |
왕·백관·왕비의 의례복의 부속품 중 하나인 넓은 띠.
개설
왕의 면복(冕服), 십이장복(十二章服), 통천관복(通天冠服)의 대대(大帶)이다. 또는 백관의 조복과 제복의 대대, 심의(深衣)의 대대, 여성용의 적의(翟衣)·원삼(圓衫) ·활옷[闊衣]의 대대 등이 있다.
연원 및 변천
먼저 왕의 면복, 십이장복, 통천관복의 대대, 왕세자 면복의 대대이다. 왕의 대대는 대개 겉이 백색, 안이 홍색이며 대대의 상단에는 홍색, 하단에는 녹색으로 선을 두르고 조대는 청색으로 하였다. 『국조오례의서례』에 의하면 구류면 구장복은 면복으로 왕이 종묘와 사직에 제사 지낼 때 입던 제복으로 규(圭)·면류관(冕旒冠)·현색증의(玄色繒衣)·훈증상(纁繒裳)·대대·백증중단(白繒中單)·패옥(佩玉)·수(綬)·훈증폐슬(纁繒蔽膝)·혁대(革帶)·말(襪)·석(舃)·방심곡령(方心曲領)으로 구성된다.
왕의 면복의 부속품에 쓰이는 대대는 홍백대대(紅白大帶) 1조(條), 왕세자 면복의 부속품 대대는 홍백소대대(紅白素大帶) 1조로 하였다. 문종의 재궁의대에 속한 대대는 안팎은 백라(白羅)인데 홍색·옥색으로 선을 하였고, 대대는 홀(笏)을 꽂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면복의 제도를 개정하는 기록에서 구제(舊制)의 면복에는 강사포(絳紗袍)의 대대에 매는 소대(小帶)는 심청색(深靑色)의 실로 땋은 띠를 사용했는데, 1716년(숙종 39) 대대를 이정(釐正)할 때 고례(古例)에 의거하여 심청색 광다회(廣多繪), 후수(後綬)는 중국의 홍화금(紅花錦)을 썼다. 또한 “내전(內殿)에서 직접 친 누에의 실로 대대를 짜서 만들었는데, 내가 어제 대성전의 제사 때 그 띠를 띠었다. 그리고 환궁할 때 강사포를 착용했을 때도 그 띠를 띠었다.”는 기록이 있다(『영조실록』 43년 9월 19일).
상장례용으로 대대를 사용한 예로는, 효장세자의 재실을 묶어 쌀 때 장인(匠人)이 홍색의 대대로 묶고 모구의(毛柩衣)를 덮었다(『영조실록』 5년 1월 17일)고 한 기록과 초상의 절차에 염습하는 데 대대를 사용했다[『효종실록』 즉위 6월 24일 2번째기사]는 기록이 있다.
『대한예전』에 의하면 십이류면 십이장복은 면류관, 상(裳), 중단(中單), 폐슬(蔽膝), 혁대, 패옥, 대대, 수(綏), 적말(赤襪), 적석(赤舃), 규, 방심곡령을 착용하여 제복을 갖추고, 대대는 소색으로 겉을 하고 붉은색으로 안을 한다. 어리와 드리운 부분에 가선이 있는데, 위의 가선에는 붉은색을 쓰고, 아래의 가선에는 녹색을 쓰며 끈은 청조를 쓴다.
다음으로 백관의 조복과 제복에 쓰인 대대이다. 금관조복은 문무백관이 대사·경축일·원단·동지 및 조칙을 반포할 때나 진표할 때에 입던 예복이다. 바지·저고리·중치막 위에 답호를 입고, 그 위에 백초중단 또는 청초의를 입은 후 적초의(赤綃衣)·적초상(赤綃裳)·적색 폐슬·대대·혁대·패옥·수·말·혜·홀·양관(梁冠)을 착용했다. 대대는 적백단 3색 겹으로 되었으며, 1~9품까지 동일하였다. 광해군대에 “백관의 조복(朝服)·혁대·대대의 제도도 서둘러 변경해 고칠 필요가 없으니, 조사를 맞을 때 일단 전과 같이 품대(品帶)를 착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광해군일기』 1년 3월 18일)라며 의복에서 잘못된 부분을 수정한 내용이 있다. 숙종대에는 “다만 대대의 제도만을 고쳐서 겉은 희고 속은 붉게 하여 도식(圖式)을 본떠서 만들도록 하였다.”라고 하였다(『숙종실록』 39년 5월 5일). “대렴할 때 의대 속에 포함된다.”(『순조실록부록』 12년 1월 26일)거나 “백관의 관복 제도를 상정하였는데, 여기서 대대는 적색·백색 2색의 초(綃)를 쓴다.”(『태종실록』 16년 3월 30일)는 내용도 있다.
한편 심의에도 대대가 쓰였다. 유학자의 법복인 심의는 수의, 제복 등 다양한 용도로 입었다. 심의에는 검정 선을 두른 대대를 두른다. 동심결로 맨 대대의 매듭 부분에는 오색사로 짠 채조를 묶어 늘어뜨렸다. 대대는 보통 흰색 비단으로 만드는데 너비는 12㎝ 내외로 하고 길이는 허리를 둘러서 앞에 맬 정도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여성 의례복인 적의, 원삼, 활옷에 쓰인 대대이다. 왕비의 대대는 왕의 대대와 비슷하나, 안팎의 색이 바뀌어 겉이 홍색, 안이 백색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에 있는 적의는 1897년(광무 1) 대한제국 이후 황후의 법복으로 입었던 것이다. 영친왕비의 심청색 적의에 부속된 대대는 면복의 대대와 비슷하여 겉이 백색, 안이 홍색이며 대대의 가장자리에는 상단과 하단의 구별 없이 전부 녹색 선을 대었다.
원삼용 대대는 종류에 따라 색과 무늬를 달리했다. 황원삼에는 용무늬를 금박한 대홍색 대대, 홍원삼에는 봉황무늬를 금박한 남색 대대, 녹원삼에는 꽃무늬를 금박한 대홍색 대대를 했다. 그러나 현전하는 유물의 홍원삼, 녹원삼, 활옷 등의 대대는 모두 홍색이다.
형태
현전하는 유물로 국립고궁박물관에 영친왕비의 대대가 있는데, 겉은 백색 공단, 안은 홍색 공단으로 되어 있다. 녹색 공단으로 선을 둘렀으며, 대대 양쪽 끝에는 청색 견사로 짠 조(組)를 달았다. 전체 길이는 75㎝, 너비는 11㎝이다.
관리의 조복과 제복에 사용하는 대대는 겉감은 백색 순인으로 하고, 흑색 순인으로 선을 둘렀으며, 안에는 적색의 매듭단추를 달아서 후수를 맬 수 있도록 하였다. 전체 길이는 79~80㎝, 너비는 9~10㎝ 내외이다.
참고문헌
- 국립민속박물관 편, 『한민족역사문화도감』, 국립민속박물관, 2005.
- 국립고궁박물관 편, 『대대·옥대: 국립고궁박물관복제 제작기술서』, 국립고궁박물관, 2012.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