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가노(扁架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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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명나라 군이 사용했던 쇠뇌의 일종.

개설

편가노(扁架弩)는 16세기 임진왜란에 참전하기 위해 조선에 들어온 명나라 군이 사용한 무기로서, 쇠뇌의 일종이다. 쇠뇌는 전통적인 활을 개선한 무기로, 나무로 만든 활 틀에 활을 얹고 손이나 기계로 활시위를 당겨서 방아쇠로 발사한다. 엄폐된 곳에서 사용할 수 있어 방어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명중률도 활에 비해 높다.

활로 화살을 쏘려면 반드시 한 팔로는 활을 잡고, 다른 팔로는 시위를 힘껏 당겨야 한다. 또 목표물을 정확히 맞히려면 당긴 상태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흔들림 없이 버텨야 하는데, 쇠뇌는 활의 이러한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편가노는 자세한 성능이나 특성, 형태는 알 수 없으나, 물레를 이용하여 시위를 당긴 후 활을 들어 올려 발사하는 녹로노(轆轤弩)와 비슷한 쇠뇌로 보인다.

연원 및 변천

쇠뇌를 누가 발명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기원전 5세기에 중국에서 널리 사용된 기록이 있다. 7세기 당나라 군은 전체 병사의 약 20%가 쇠뇌로 무장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때인 408년에 만들어진 덕흥리 벽화무덤에서 쇠뇌가 보인다. 신라에서도 558년(신라 진흥왕 19)에 나마(奈麻) 신득(身得)이 포노(包努)를 만들어 나라에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포노는 상자노와 같이 성을 방어할 때 쓰는 무기로, 대포와 같이 멀리 활을 날려 보낼 수가 있다. 진흥왕은 신득이 만든 포노를 성 위에 비치하여 방어용 무기로 사용하게 했다.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쇠뇌가 활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중종 때 서후(徐厚)가 강노(强弩)와 노궁(弩弓) 등을 제작 활용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들이 많이 사용하였다. 이후 화기의 발달로 활용이 잠시 주춤했지만, 다시 산성 방어 무기로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후기에 사용된 쇠뇌는 궐장노(蹶張弩), 수노기(手弩機), 등자노(登子弩), 녹로노 등이 있다.

한편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 군의 여러 가지 무기가 조선에 알려졌는데, 그 무기 중에는 편가노를 비롯하여 담노(擔弩)·나인과(拿人檛)·제갈노(諸葛弩)·피갑(皮甲)·뇌설도(雷雪刀)·관도(關刀)·월아잔(月牙剗)·아창(丫槍)·등패(籐牌)·활나인곤(活拿人棍)·낭선(郞筅)·천봉전(天篷戔)·양가창(楊家槍)·사릉편(四楞鞭)·언월도(偃月刀)·수전(袖箭) 등이 있었다(『선조실록』 26년 4월 10일) (『선조실록』 26년 4월 12일).

형태 및 용도

편가노의 재료나 형태는 문헌에 드러나지 않아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름으로 유추해 보면 녹로노와 비슷한 형태의 쇠뇌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녹로노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그 형태와 용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녹로노는 물레로 시위를 당긴 후 활을 들어 올려 발사하는 기계식 쇠뇌의 일종인데, 주로 적의 성채를 공격하거나 방패를 깨뜨리는 데 사용하였다.

1767년(영조 43)에 간행된 쇠뇌 관련 서적인 『노해(弩解)』에 따르면, 강노를 비롯한 대형 쇠뇌들은 녹로를 이용해 시위를 당기는 것이 특징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을 ‘녹로를 활용한 쇠뇌’라는 뜻에서 ‘녹로노’라고 부르기도 한다.

녹로는 원래 배의 닻줄이나 기중기 밧줄을 감아올리는 물레 혹은 활차를 말하는데, 녹로를 활용하면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다. 이런 원리를 쇠뇌에 응용해 거대한 쇠뇌를 상대적으로 적은 힘만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참고문헌

  • 『노해(弩解)』
  • 김기웅 외, 『한국무기발달사』, 국방군사연구소, 1995.
  • 민승기,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 2004.
  • 박재광, 『화염 조선-전통 비밀 병기의 과학적 재발견』, 글항아리, 2009.
  • 박재광 외,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경인문화사, 2008.
  • 이강칠, 『한국의 화포』, 동재, 2004.
  • 시다노 고이치, 신동기 옮김, 『무기와 방어구-중국편-』, 들녘,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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