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주(退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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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 고주(高柱)를 사용해 툇간이 형성된 경우에서 고주에 상대되는 평주(平柱)를 이르는 말.

개설

퇴주(退柱)는 현재 건축 관련 용어에서 사용하지 않는 사례이며, 고문헌에서도 사용례를 쉽게 찾아보기 힘든 용어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퇴주는 총 4차례 등장한다. 총 4차례 중 2번은 광해군조에 진행되었던 창경궁 명정전 재건 과정에서 등장한다. 광해군은 명정전을 재건하면서 ‘若稍向東退柱善造(약초향동퇴주선조)’하라고 지시하였다(『광해군일기』 8년 8월 24일). 그런데 기사에 등장하는 여러 내용을 살펴보면 이때 사용한 퇴주라는 용어는 건축물의 특정한 명칭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단지 명정전의 동쪽 기둥을 물려서 지으라는 내용으로, 건축물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크게 확장하여 인정전과 같은 크기로 지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창경궁은 다른 궁궐과 달리 동향이다. 따라서 명정전의 규모를 크게 만들기 위해서는 동쪽 혹은 서쪽으로 평면 크기를 확장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월대(月臺)에 커다란 변화를 주지 않고 확장하는 방법은 동쪽으로 평면 크기를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월대의 변경 역시 고려의 대상이었으나 공사 규모가 너무나 커지기 때문에 시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선왕조실록』 본문 내용에서는 월대를 늘리기 어려운 상황과 전각의 규모가 커질 수 없는 상황이 언급되어 있다.

@@00007267_01_창경궁 명정전 평면도

퇴주의 다른 용례는 세종조에 시행되었던 가사규제(家舍規制)의 내용에서 등장한다. 먼저 대군과 관련된 규제 내용을 살펴보면 “대군은 60간의 규모이고, 내루(內樓)가 10간, 정침, 익랑(翼廊), 서청, 내루, 내고의 매간 길이는 11자이며, 폭은 전후퇴 모두 합하여 18자이고, 퇴주는 11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세종실록』 31년 1월 26일). 건물의 폭을 규정하면서 전퇴(前退)와 후퇴(後退)를 모두 합해 18자로 규정하고 있다. 전퇴와 후퇴는 내부에 고주가 사용된 건물에서 형성되는 공간이다. 내부에 2개의 고주를 사용한 경우 대들보가 사용된 중앙 공간을 제외하고 고주와 외부 평주 사이에 형성되는 공간을 툇간이라고 한다. 종묘(宗廟)정전(正殿)과 같이 내부에 고주가 2개 사용된 경우 정면에 위치한 툇간을 전퇴라고 하며, 배면 쪽에 위치한 툇간을 후퇴라고 칭한다. 결국 대군의 집은 측면 폭이 최대 18자를 넘지 못한다는 규정이다. 그리고 이때 퇴주의 높이가 11자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퇴주는 고주가 사용된 건물에서 건물의 정면 또는 배면에 사용한 기둥을 지칭하는 것이며 현재의 평주에 해당한다. 건물의 폭을 규정하면서 건물의 면적을 규제하고 있으며, 외부 평주의 길이를 규정하면서 건물의 높이를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00007267_02_종묘정전 단면도

퇴주는 『현종실록』에도 등장한다. 1663년(현종 4) 4월 3일 영녕전수개도감이 영녕전 개수 공사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주제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퇴주가 등장한다. 이때 공사는 기존 영녕전의 익실(翼室) 좌우에 1간을 부가하는 공사였다. 논의 내용 중 영녕전 익실에는 후퇴주(後退柱)가 없어서 북벽에 감실을 만들고 신주를 모셨기 때문에 전면이 너무 좁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번에 전후퇴주(前後退柱)를 새롭게 세워 예에 맞게 고쳐야 하는데 그러면 정전과 규모가 같아지기 때문에 정전에 비해 자수[尺數]를 감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전후퇴주는 영녕전 익각에 전퇴와 후퇴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즉 건물 내부에 고주를 세우고 외부에 평주를 세우는 2고주 형식의 건물로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현종실록』 4년 4월 3일). 현재 영녕전은 익각에 전퇴와 후퇴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모습은 현종조에 변형된 모습임을 알 수 있다.

@@00007267_03_영녕전 전퇴 1

@@00007267_04_영녕전 전퇴 2

형태

건축물의 규모나 평면을 논의할 때 ‘간(間)’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 간이라는 용어는 2가지의 용례가 모두 흔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우선 정면 몇 간, 측면 몇 간과 같이 입면 상에서 보이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리를 나타낼 때 사용한다. 간의 크기가 클수록 건축물의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현재 정면 또는 측면이라는 명칭과 같이 건축물의 진입 방향에 따라 건축물의 규모를 지칭한다. 하지만 건축 관련 의궤에서는 이를 도리통(道里通), 양통(樑通)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정면을 도리통, 측면을 양통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건축물의 구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짧은 방향으로 보를 사용하고, 긴 방향으로 도리를 사용하는 구조체의 형상을 기준으로 방향을 설정한 것이다. 한국 건축에서는 이때 설정하는 간수를 3간, 5간과 같이 홀수로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가장 중심에 설정된 간은 다른 곳에 비해 넓게 조성한다. 이때 설정된 중심의 간을 정간(正間)이라고 칭하며, 궁궐 건축에서는 특히 어간(御間)이라고 칭한다. 그 외 다른 간은 넓이가 정간에 비해 좁기 때문에 협간(夾間)이라고 한다. 여러 개의 협간이 설정된 경우에는 정간에서 가까운 곳부터 제일협간, 제이협간 순으로 숫자를 늘려 부른다.

간의 또 다른 용례는 전체 건물의 크기를 지칭할 때 사용한다. 이때의 간은 4개의 기둥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공간을 의미한다. 초가삼간, 99칸 집, 육간대청 등에서 사용된 간은 4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몇 개인지를 지칭한 사례들이다. 삼간이라는 말은 총 8개의 기둥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을 말한다. 한 간은 부엌이고, 한 간은 안방이며, 또 한 간은 사랑방이 차지한다. 조선시대에 이보다 작은 건물은 만들어지기 어려웠기 때문에 초가삼간이라는 말은 가장 작은 건축물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건물 내부에 고주가 세워지는 경우 고주와 평주 사이 4개의 기둥으로 구획된 부분을 툇간이라고 지칭한다. 툇간이 건물 정면에 위치한 경우를 전퇴라고 칭하고, 배면에 위치한 경우를 후퇴라고 한다. 퇴주는 특별히 이곳에 사용된 평주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고주가 사용된 건물의 경우 고주 내부에 위치한 간의 넓이에 비교해 툇간은 면적이 좁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툇간을 하나의 간으로 셈하는 경우와 반의 크기로 셈하는 경우가 있다. 건축 관련 의궤에서는 두 가지 사례가 모두 등장하기 때문에 어느 쪽이 정확한 방법이라고 명확히 논하기 어렵다. 따라서 건축 관련 고문헌에서 간을 다룬 경우 이상과 같은 두 가지 용례를 모두 상정한 상황에서 판단해야만 한다.

@@00007267_05_부석사 무량수전 평면도

참고문헌

  • 『창경궁수리소의궤(昌慶宮修理所儀軌)』
  • 『창덕궁수리도감의궤(昌德宮修理都監儀軌)』
  • 『저승전의궤(儲承殿儀軌)』
  • 『창덕궁창경궁수리도감의궤(昌德宮昌慶宮修理都監儀軌)』
  • 『창덕궁만수전수리도감의궤(昌德宮萬壽殿修理都監儀軌)』
  • 『영녕전수개도감의궤(永寧殿修改都監儀軌)』
  • 『남별전중건청의궤(南別殿重建廳儀軌)』
  • 『경덕궁수리소의궤(慶德宮修理所儀軌)』
  • 『종묘개수도감의궤(宗廟改修都監儀軌)』
  • 『의소묘영건청의궤(懿昭廟營建廳儀軌)』
  • 『수은묘영건청의궤(垂恩廟營建廳儀軌)』
  • 『건원릉정자각중수도감의궤(健元陵丁字閣重修都監儀軌)』
  • 『경모궁개건도감의궤(景慕宮改建都監儀軌)』
  • 『문희묘영건청등록(文禧廟營建廳謄錄)』
  •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 『인정전영건도감의궤(仁政殿營建都監儀軌)』
  • 『현사궁별묘영건도감의궤(顯思宮別廟營建都監儀軌)』
  • 『서궐영건도감의궤(西闕營建都監儀軌)』
  • 『창경궁영건도감의궤(昌慶宮營建都監儀軌)』
  • 『창덕궁영건도감의궤(昌德宮營建都監儀軌)』
  • 『종묘영녕전증수도감의궤(宗廟永寧殿增修都監儀軌)』
  • 『남전증건도감의궤(南殿增建都監儀軌)』
  • 『진전중건도감의궤(眞殿重建都監儀軌)』
  • 『영희전영건도감의궤(永禧殿營建都監儀軌)』
  • 『중화전영건도감의궤(中和殿營建都監儀軌)』
  • 『경운궁중건도감의궤(慶運宮重建都監儀軌)』
  • 경기문화재단 편집부,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 경기문화재단, 2007.
  • 김동욱, 『종묘와 사직』, 대원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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