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단역(林丹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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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지역의 역도(驛道) 중 하나인 은계도에 속한 역.

개설

임단역(林丹驛)은 고려시대에는 개경에서 동계 방면으로 향하는 역로상에 편성된 도원도(桃源道)에 소속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성종대에 은계도(銀溪道)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별다른 변화 없이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시대에는 개경과 철령을 연결하는 도원도에 소속된 42개 속역 가운데 하나로, 평강(平康)에 위치하였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문종대 이후에 고려의 역제(驛制)가 22역도-525속역 체제로 정비되는 과정에서 도원도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려사(高麗史)』「병지(兵志)」 참역(站驛) 조에는 역명이 임단역(臨湍驛)으로 표기되어 있어, 조선시대의 기록과는 차이를 보인다. 조선 건국 이후 기존의 역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역명의 표기가 임단역(林丹驛)으로 변경된 것으로 짐작된다.

조직 및 역할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강원도 평강현 조를 살펴보면, 당시 임단역에는 역리(驛吏) 21명, 역노(驛奴) 15명, 역비(驛婢) 3명과, 기마 1필, 복마 2필 등 3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임단역이 평강현 관아 북쪽 10여 리 지점에 위치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변천

임단역은 세종대에 강원도 평강현에 위치하였으며, 경기강원도정역찰방의 관할하에 있었다. 이는 『세종실록』 「지리지」 강원도 평강현 조에서는 임단역의 존재가 확인된다. 세종 연간에는 경기도 및 강원도의 일부 역들을 통합하여 경기강원도 정역으로 편성하였다. 그런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이때 경기강원도 정역에 소속된 22개 속역 가운데 녹양역(綠楊驛)·안기역(安奇驛)·양문역(梁文驛)·풍전역(豐田驛) 등 4개 역을 제외한 나머지 18개 역이 모두 강원도 지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해 보면, 임단역의 경우 세종대에 경기강원도 정역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경기강원도정역찰방하의 속역들의 명칭이 모두 확인되지 않지만, 『세종실록』「지리지」의 역들과, 고려사 참역 조 및 경국대전 수록 역을 비교해보면, 임단역이 경기강원도정역찰방에 포함됨을 알 수 있다.

『경국대전』에는 임단역이 은계도에 소속되었는데, 경기강원도정역찰방 대신 은계도의 존재가 세조 8년 역도 정비 시에 확인되고 있으므로, 이미 그 당시부터 임단역은 은계도에 소속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은계도의 속역으로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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