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輪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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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궁(梓宮)을 광(壙) 안으로 이동시키는 도구.

개설

대개 석실에 사람이 들어가 작업을 할 수 없으므로, 윤여를 설치해 시신을 넣은 관인 재궁을 봉안할 수 있도록 했다. 순(輴)현궁(玄宮) 문 밖에 이르러서 재궁을 받들어 대관(大棺)에 안치하고 뚜껑을 덮고 임(衽)을 설치하고 관의를 덮고 명정을 취하고 깃대[杠]를 버리고 그 위에 놓았다. 윤여로 재궁을 받들어 연도(羨道)로 들어가서 현궁의 탑(榻) 위에 북쪽을 머리로 하여 안치했다. 그 외에 궁궐 외문 밖에서도 순에서 재궁을 내려 대여(大轝)에 올릴 때에도 윤여를 사용했다.

연원 및 변천

윤여는 거의 변함없이 사용되었다. 다만, 성종 국상 때에 소륜여(小輪轝) 사용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재궁의 발인 때 빈전에서 돈화문까지 소륜여에 실어 옮기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시는 사람들이 모두 내려보아 무엄하다는 이유로 시행하지 않았다.

형태

『세종실록』 「오례」를 보면, 윤여는 용도가 세 가지인데 그 제도가 조금씩 다르다고 했다. 하나는 재궁을 대여에 올리고 내리고 할 때와 현궁으로 들어갈 때에 사용한다. 먼저 장강(長杠) 2개에다 윤축(輪軸) 7개를 사이에 설치하고 다음에 횡목(橫木) 4개를 설치하고 다음에 횡강(橫杠) 9개를 양쪽 장강의 아래에 설치하고 각각 철정(鐵釘) 4개를 박고, 이내 숙마(熟麻) 끈으로 이를 묶는다. 백색 정포(正布) 12필을 사용하여 횡강에 잡아매고 전후에 각 2명과 좌우에 각 8명이 들어 멘다. 또 장강의 양쪽 끝에 각각 둥근 고리를 박아서 큰 끈으로 매서, 높은 곳에 오르면 앞에서 당기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뒤에서 당기게 하는데, 좌우에 각각 둥근 고리 3개를 박아서 끈을 매도록 마련한다. 윤대판(輪臺板)은 먼저 윤여에 두 재궁을 받들어 대판(臺板)에 안치하고는, 홍주(紅紬)로 고리에 꿰어 재궁을 유지하게 한 후에, 그 대판을 당기면 재궁은 요동하지 않는데도 대판은 굴러가게 된다.

또 하나는 석실 안에서 사용한다. 먼저 장강 2개에 6개의 구멍을 일정 간격으로 파고 윤축 6개를 양쪽 장강의 구멍에 끼운다. 다음에 횡목 5개를 설치한다. 그 양쪽 장강의 북쪽 끝의 상면(上面) 1척에는 오목한 곳을 세로로 파고 그 좌우에는 작은 구멍을 가로로 뚫고, 별도로 작은 윤축을 만드는데, 둘레와 길이가 각각 2촌 5푼이다. 세요(細腰)를 만들고 손가락 크기만 한 둥근 철정을 사용하여 그 중간을 뚫어서 그 양쪽 끝을 작은 구멍에 넣어서 이로 하여금 윤(輪)을 굴리게 한다. 이어서 백색 정포 4필로써 꼬아 끈[繩]을 만들어, 두 끝을 각각 작은 윤의 허리에 붙여 두른다. 그 베 끈 양쪽 끝을 각각 석실 문 밖으로 끌어낸다. 재궁의 윤이 안의 윤여에 이르러 올린 후에, 좌우의 베 끈으로써 각각 한 끝을 연결시켜 재궁의 남쪽 끝에 붙잡아 매고, 좌우의 사람이 그 끈의 양쪽 끝을 당기게 하고, 또 두서너 사람을 시켜 천천히 재궁을 밀어 들여서 북쪽 끝이 동자목(童子木)에 붙게 하고서 그친다. 좌우의 장강 위의 내변(內邊)에는 세정(細釘)을 사용하여 첩목(貼木)에 연접(連接)하게 한다. 보대판(補臺板) 2개를 석체(石砌)의 양쪽 옆에 둔다.

또 다른 하나는 석실의 문 밖에서 사용한다. 제도는 위와 같고, 높낮이는 석실의 내윤여(內輪輿)와 한 줄이 되는데, 먼저 대관을 그 위에 놓고서 재궁을 안치하고, 윤은 내윤여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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