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대장(訓鍊大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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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오군영의 하나로 임진왜란 중에 설립한 훈련도감의 대장.

내용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으로 피난하였던 선조가 환도 이후 왜군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한 훈련도감의 대장을 말한다. 훈련도감은 훈국(訓局)으로 지칭되기도 하여 훈국대장이라고도 했다. 훈련도감 설립 초기의 도제조는 류성룡이었으며, 초대 훈련대장은 조경(趙儆), 유사당상(有司堂上)은 이덕형(李德馨)이었다(『선조수정실록』 27년 2월 1일).

훈련도감은 왜군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한 취지에 따라 조총과 같은 개인화기를 다루는 포수의 훈련과 양성을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훈련도감 군병들은 기존의 조선군대와 달리 급료병으로 유지된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군병이 병농일치의 소산에서 나온 징집병이었다면, 훈련도감군은 모병에 의한 직업군인이었다.

훈련도감은 조선후기로 갈수록 설립 초기 군사 양성의 목적에서 궁궐 방어부터 국왕의 시위, 도성 방어에 이르는 수도방어체제의 핵심군으로 자리 잡게 된다. 숙종대에는 도성 방어 체제를 갖추면서 어영청, 금위영과 함께 삼군문(三軍門)이라고 불렸으며, 국왕의 행행 시 도성의 방어를 책임지면 유도대장(留都大將), 행행의 시위를 책임지면 수가대장(隨駕大將)의 직책을 담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조선후기로 갈수록 훈련대장의 지위도 단순한 군영의 지휘관이 아니라 왕권과 신권 사이의 균형을 유지 내지 견제할 수 있는 정치적인 위치로 격상되었다. 특히 조선후기의 국왕들은 훈련도감을 비롯한 군영의 지휘권 장악에 따라 정국을 좌우할 수 있었다. 예컨대 숙종은 재위 기간 동안 수차의 환국을 일으키면서 군권을 장악하였는데, 권신이었던 김석주를 병조 판서와 훈련대장을 겸임시켜 정국을 좌우하였다. 훈련대장은 1881년(고종 18) 오군영을 통폐합하여 무위영(武衛營)장어영(壯禦營)을 만들면서 폐지되었다.

용례

敎曰 仁陵植木 三營門及摠戎廳守禦營 合力擧行 而訓將進去監蕫(『철종실록』 8년 2월 28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차문섭, 『조선시대 군사관계 연구』, 단국대학교출판부,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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