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토(后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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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五行) 중 토(土)를 다스리고, 오방(五方) 중 중앙을 관리하는 신령.

개설

후토는 오행 중 토를 관리하는 신령이기 때문에 ‘토정(土正)’으로 별칭되었는데, 이때 ‘정(正)’은 관장(官長)을 의미하였다. ‘후토씨(后土氏)’로도 칭해진다. 고려시대부터 국가 제례인 사직제(社稷祭)에 편입되어 토지의 신인 대사(大社)의 배위(配位)로서 제향되었고, 조선시대에도 사직제에서 대직(大稷)의 배위로서 제향되었다.

내용

후토의 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는데, 그중의 하나는 후토는 본래 공공씨(共工氏)의 아들 구룡(句龍)으로 공공이 천하 구주(九州)를 제패한 후 그를 이어받아 구주를 평정했다고 하며, 구주를 평화롭게 한 공로를 인정받아 후토라는 관직을 얻고 후대에 신령으로 승격되어 제향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설에 따르면 오제(五帝)의 첫 번째 군주이자 중앙의 신인 황제(黃帝)를 보좌하여 토와 중앙을 관리했다고 한다. 혹은 오제의 세 번째 군주인 제곡(帝嚳)을 보좌하는 오행관(五行官)의 하나로서 토와 중앙을 다스렸다고도 한다. 제곡을 보좌한 오행관은 목(木)과 봄·동쪽을 다스리는 관리인 목정(木正) 구망(句芒), 화(火)와 여름·남쪽을 다스리는 관리인 화정(火正) 축융(祝融), 금(金)과 가을·서쪽을 다스리는 관리인 금정(金正) 욕수(蓐收), 수(水)와 겨울·북쪽을 다스리는 관리인 수정(水正) 현명(玄冥), 토(土)와 중앙을 다스리는 관리인 토정(土正) 후토 등이었다.

후토가 국가 제례의 봉행 대상이 된 것은 당대(唐代)부터로 추정되는데, 후토를 토지의 신인 대사(大社)의 배위로, 후직(后稷)을 오곡(五穀)의 신인 대직(大稷)의 배위로 함께 제사지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수용·참조하여 고려초기인 991년(고려 성종 10)에 사직단(社稷壇)을 세우고 사직 제례를 거행하면서 후토와 후직을 대사, 대직의 배위로 제향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1395년(태조 4)부터 사직 제례를 시행하면서 후토, 후직을 계속해서 대사, 대직의 배위로 제향하였다. 또한 후토는 중사(中祀)로서 구망·축융·욕수·현명·후토·후직의 여섯 신령에게 강우를 기원하면서 올리는 제례인 우사(雩祀)에서도 다른 다섯 신령과 함께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대한예전(大韓禮典)』
  • 『대당개원례(大唐開元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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