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구첨정(黃口簽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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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군역자 수를 채우기 위하여 어린 남자아이에게도 군역을 부과하던 행위를 비꼬는 말.

개설

각종 기관에서 양인 군역자를 확보하려는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15~59세에 해당하는 장정 이외에 어린이를 군역에 넣어 군포를 대납시키는 일이 빈번해졌다. 황구첨정은 백골징포(白骨徵布)와 함께 양역변통이 시작되는 17세기 후반부터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백골징포란 이미 죽은 자에게 군포를 부과하여 그 부모나 친척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첨정이나 징포를 생략하고 그냥 황구(黃口)·백골(白骨)이라고 표현해도 황구첨정이나 백골징포를 가리키는 의미로 이해되었다(『정조실록』 2년 10월 23일).

내용 및 특징

국법으로는 5세 미만의 황구유아(黃口乳兒)나 14세 이하의 어린아이를 군적(軍籍)에 등록시키면 이에 관련된 서리는 물론 수령까지도 문책이나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양역변통이 한창 논의되던 시기의 정책은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양정(良丁)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나이 어린 아이들까지 군역 대상자로 파악하게 되었다.

1676년(숙종 2)에는 “15세가 차지 아니한 자에게 역(役)을 정하는 것이 부당할 듯하나, 궐액(闕額)은 많고 군역 대상자인 한정(閒丁)은 부족하므로 부득이 11세 이상으로써 역을 정”하도록 하는 「양정사핵절목(良丁査覈節目)」을 공표하였다(『숙종실록』 2년 6월 15일). 여기서는 “5세부터 10세까지의 무리는 따로 기록하고 책으로 만들어 그 연한이 차기를 기다려서 차례로 그 부족한 숫자에 따라 역을 정할 것”도 명시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호적상에 현존하는 호구(戶口)를 많이 등재하지 못하고 양인 남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취해진 정책이었다. 황구첨정을 불법적인 것으로 인정하면서도 정책 중에는 이미 어린아이를 군적에 올릴 여지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변천

군역 정원을 줄이고 실제로 경제적 부담 능력이 있는 자들로만 군역에 충당하려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면서 황구첨정의 불법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도망을 가거나 하여 군역을 피하는 경우에는 그 사람의 친척이나 이웃에게 군역을 징수하는 족징(族徵)·인징(隣徵)의 무리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불법적인 군역 충정 사례로서 황구첨정과 백골징포가 이러한 현상과 함께 거론되었다.

군역자를 개별적으로 일일이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지방 행정구역의 리(里) 단위로 군역을 대정(代定)하는 이정법(里定法)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또한 지역 단위로 군역을 공동 부담하는 이징법(里徵法)도 제시되었다. 이들 방법이 실시된다면 개별 군역자를 확보하는 것에서 나아가 황구첨정·백골징포의 행위도 없어질 수 있었으나, 그 방법이 실현된 곳은 많지 않았다.

개별 군역자를 확보하는 방안에 대신해서 일찍부터 호적상의 모든 호구에게 호포(戶布)·구포(口布) 등을 부과하여 군역을 일괄 징수하는 체제로 전환하려는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이 방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황구첨정이나 백골징포의 폐단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 관용구처럼 따라다녔다. 그러나 현실적인 군역정책은 군역 부담을 반으로 줄이고, 지역 단위로 소속별·역종별 군액(軍額)을 고정화하여 소속 기관에서 그 이상의 징수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18세기 말 이후로 지역에 따라서는 군포를 지역공동체의 공동납으로 해결하는 곳이 생겨났다. 정군(正軍)의 명부인 군안(軍案)이 허구화되었다고는 하나, 번(番)을 서거나 훈련을 하는 군병으로 징발하는 경우에는 여전히 개별 군역자를 충당하는 원칙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군액이 지역별로 정해지면서 지방관청은 지역별 군액에 맞추어 군역 재원을 상납·충당하기만 하면 되었다.

19세기에는 납포와 징병에 대한 지방관청의 자의적 운영이 문제되기는 하였지만, 백골징포나 황구첨정의 우려는 점차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참고문헌

  • 『거관대요(居官大要)』
  • 『조선민정자료(朝鮮民政資料)』 목민편(牧民篇)
  • 김옥근, 『조선 왕조 재정사 연구 Ⅲ』, 일조각, 1988.
  • 김준형, 「18세기 이정법의 전개: 촌락의 기능 강화와 관련하여」, 『진단학보』 58,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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