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革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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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을 따르지 않은 나라 또는 군주를 혁신하여 덕이 있는 나라 또는 군주로 대체하는 것.

개설

『서경(書經)』은 하·은·주 3대의 왕조 교체 과정을 통해 혁명(革命)의 사례를 보여준다. 『서경』은 통치자가 하늘과 백성의 요구를 외면하면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자가 하늘을 대신하여 기존의 문란한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하였다. 그 후 맹자(孟子)는 혁명에 대한 체계적인 관점을 정리하였다. 맹자 이전의 군주(君主)는 덕(德)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맹자는 덕이 있는 자가 군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당대의 군주들에게 백성을 중히 여길 것을 말하면서, 군주가 함부로 힘을 믿고 학정을 하게 되면 백성의 한이 깊어져 마침내 그 지위를 잃기에 이른다는 것을 경고하였다. 그는 인(仁)과 의(義)을 해치는 자를 적(賊)과 잔(殘)이라 간주하면서, 그러한 자는 군주의 명분을 상실한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탕(湯)·무(武)의 방벌(放伐)을 정당화하였다. 그 근거는 바로 천명(天命)이다. 백성의 뜻을 거스르면 천명도 떠나게 되므로 혁명으로써 군주를 내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새로운 유덕자가 천명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역설한 것이다.

내용 및 특징

중국에서 국가란 같은 성(姓)을 가진 이들 사이의 세습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성의 변경은 그 자체로 왕조의 교체를 의미하였다. 중국 고대의 제왕은 천명을 받아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통치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천명이 그에게 주어지는 이유는 그가 유덕(有德)한 자이기 때문이었으므로, 제왕이 제왕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을 잃어버리고 그에 따라 민심(民心)이 이반(離叛)되면 천(天)은 제왕에게서 명(命)을 거두어 들여 다른 유덕한 자에게 명을 내린다. 이러한 혁명론은 『주역』에서 그 원시적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주역』의 49번째 괘는 혁괘(革卦: 上兌☱下離☲)인데, 변화의 때를 계기로 하여 보다 나은 발전을 맞이할 수 있는 도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체계화된 이론으로 제시한 것은 맹자였다. 맹자는 탕무(湯武)의 방벌(放伐)을 언급하면서 민심과 유리된 제왕은 자기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다. 맹자는 현실적으로 제왕인 걸(桀)과 주를 대신한 탕왕과 무왕의 행위를 걸과 주의 나태함과 비도덕성에 근거하여 합리화시키고 있으며, 그것이 비도덕적인 정권에 대한 응징을 용인하는 혁명 사상으로 전개되었다.

맹자의 혁명론은 사실 그의 위민의식(爲民意識)에 기초한 것이며, 또한 위민을 구현하기 위한 보완적 방법이었다. 즉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고 하는 민본주의(民本主義)에 입각한 맹자의 위민의식은 백성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는 부도덕한 정권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고, 그러한 필요로 말미암아 당연히 혁명론으로 전개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서경(書經)』의 정치 이념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천자가 하늘을 대행하여 백성들을 통치한다는 천명론(天命論)에서는 천자의 통치는 천의 의지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천의 의지를 아는 방법은 바로 백성의 의사를 통해서 가능하다.

혁명의 방법으로는 천자가 그 자손에게 천위(天位)를 세습하지 않고 다른 성의 유덕자에게 양위하는 선양(禪讓)의 방식과, 탕왕이나 무왕의 경우와 같이 덕을 잃어버린 천자를 무력으로 추방 또는 토벌하는 방벌(放伐)의 방식이 있다. 다만 맹자의 혁명론에서는 혁명을 일으키는 주체의 도덕성이 엄격히 요구된다. 즉 탕왕·무왕과 같이 완결된 인격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혁명이 추진되었을 때만이 그 혁명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혁명은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던 왕조에서는 양날의 검으로 비춰졌기 때문에, 한대와 당대에는 금서로 분류되기도 하는 등 역사의 부침 속에서 평가가 엇갈리기도 하였으나, 현대적 시각에서 보자면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주역(周易)』
  • 『서경(書經)』
  • 『맹자집주(孟子集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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