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무(鶴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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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鶴) 모양의 탈을 몸에 착용하고서 춤추는 궁중 정재의 하나.

개설

학무(鶴舞)는 성종대부터 대한제국기까지 궁궐 안팎에서 설행된 각종 행사에서 사용되었다. 학 탈을 착용한 두 명의 무용수가 등장하는 학무는 환궁의례(還宮儀禮), 나례(儺禮), 궁중연향에서 두루 공연되었다. 상황에 따라 독립적으로 혹은 다른 종목과 함께 상연되었다. 학무는 학의 순수한 이미지와 동물 동작을 흉내 내는 오락성까지 겸비하여 다양한 행사에서 활용되었다.

연원 및 변천

학무는 조선 성종대부터 등장하여 대한제국기까지 지속적으로 공연되었다. 두 마리의 학이 출현하는데 성종대에는 청학(靑鶴)과 백학(白鶴)이 춤추다가, 고종대에는 청학과 황학(黃鶴)으로 바뀌었다.

절차 및 내용

학무는 궁궐 안팎에서 연행되었다. 궁궐 밖에서 학무가 선보이는 경우는 왕이나 왕비가 특정 목적을 위해 궐 밖으로 행차했다가 환궁할 때였다. 왕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의미로 거가환궁의례가 행해졌는데 여기에 학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 학무는 단독으로 연행되지는 않았고 잡희(雜戱), 교방가요(敎坊歌謠) 등과 함께 환궁의례를 장식하였다.

왕이 입궐하기 전에 행하는 행사에 학무가 속했던 까닭은 학이 지니는 정결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궐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세속의 잡된 기운을 떨쳐버리려는 정화의 맥락이 순수한 학의 상징과 연결된 것이다. 학무 관람을 통해 심신이 정화된 왕은 신성 공간인 궁궐에 들어가기 적합한 상태로 전환되었다.

궐 안에서 학무가 행해지는 경우는 나례, 궁중연향이라는 두 가지 상황으로 정리된다. 12월 그믐날 한 해의 액운을 떨치고 새해를 맞이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진 나례에서 학무가 연행되는 경우에는 연화대무(蓮花臺舞), 처용무(處容舞)와 함께 상연되었다. 즉 나례에서도 학무가 단독으로 행해지지 않았으며 학연화대처용무로 합설된 형태였다.

학무가 나례에서 연화대무 및 처용무와 함께 연출된 이유는 나례라는 의식이 새벽부터 시작되어 거의 하루를 꼬박 채우며 이행되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공연물이 온 종일 이어져야 하는 나례의 상황상, 길고 연속성 있는 춤이 요청되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또한 나례에서 올릴 종목들은 한 해의 삿된 기운을 쫓는 벽사(辟邪)의 성격을 지녀야만 하는데, 학무가 지니는 깨끗한 이미지가 이에 부합되어 함께 어울릴 수 있었다.

궁중의 각종 연향에는 학무가 독립된 정재로 등장하기도 하며, 연화대무와 연이어 공연되기도 하였다. 즉 왕비가 친잠의(親蠶儀)를 마치고 주연을 베풀 때 학무를 단독으로 연행하였다(『광해군일기』 7년 12월 9일). 그리고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서 다섯 번째 술잔을 올릴 때 여민락만(與民樂慢)과 유황곡(惟皇曲)의 반주에 맞춰 학무가 연행되었으며 이어 여섯 번째 술잔을 올릴 때 환환곡(桓桓曲)의 반주에 맞춰 연화대무가 올려지기도 하였다(『정조실록』 19년 윤2월 13일). 이후에도 궁중연향에서의 학무 공연은 1902년까지 지속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궁중연향에서 공연되는 학무는 환궁의례나 나례에서의 쓰임과 달리 춤 자체를 즐기는 오락적인 의미가 강했다. 학이라는 동물의 동작을 흉내 내는 춤사위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춤 자체만으로도 관객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제공해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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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림1_00015231_『樂學軌範』권8 鶴
    1. 그림2_00015231_『園幸乙卯整理儀軌』
    1. 그림3_00015231_『呈才舞圖笏記』
    1. 그림4_00015231_『高宗壬寅進宴儀軌』(1902.11)

학무에 사용된 학 모양의 탈을 만드는 방법은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상세하게 전한다. 즉 학의 몸 껍질[軀穀]은 대나무[竹]로 만들어 종이를 바르며, 학의 목은 대나무를 둥글게 엮어 만들며 바깥은 흰 베[白布]로 싸고 안은 장목(長木)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숙승(熟繩)을 아래 부리에 매어 그 숙승을 잡고 흔들어서 돌아보거나 쪼는 형상을 짓게 제작하였다. 백학의 깃털은 흰 거위[唐鴈]의 털을 붙이며 청학은 청색으로 물들인 깃털을 썼다. 날개는 황새[鸛]의 날개털을 쓰고, 꼬리는 검은 닭[黑鷄]의 꼬리털을 활용하였다. 백학은 청색 부리를 달고, 청학은 녹색 부리를 달았다. 백학의 양 무릎에는 홍색 치마를 입히고 홍색 버선과 홍색 나무 발[木足]을 신겼다. 청학은 청색 치마, 청색 버선, 녹색 나무 발을 착용시켰다. 백학은 흰 베를, 청학은 청색 베를 각각 마름질하여 배 아래로 드리워서 무릎을 가렸다. 가슴 앞과 양 날개 밑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밖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즉 성종대에는 대나무, 베, 장목, 거위 털, 닭의 꼬리털, 치마, 버선, 나무 발 등의 재료로 학의 탈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악학궤범(樂學軌範)』
  • 『친잠의궤(親蠶儀軌)』
  •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 『고종정축진연의궤(高宗丁丑進宴儀軌)』
  • 『고종정해진찬의궤(高宗丁亥進饌儀軌)』
  • 『고종임진진찬의궤(高宗壬辰進饌儀軌)』
  •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
  • 『고종신축진연의궤(高宗辛丑進宴儀軌)』
  • 『고종신축진찬의궤(高宗辛丑進饌儀軌)』
  • 『고종임인진연의궤(高宗壬寅進宴儀軌)』
  • 성경린, 『韓國傳統舞踊』, 일지사, 1979.
  • 이흥구, 『학연화대합설무』, 피아, 2006.
  • 장사훈, 『韓國傳統舞踊硏究』, 일지사, 1977.
  • 사진실, 「정재의 공연공간과 연출원리」, 『한국음악연구』 38집, 한국국악학회, 2005.
  • 송지원, 「조선시대 궁중학무(鶴舞)의 연행 양상 연구」, 『공연문화연구』 15집, 공연문화학회, 2007.
  • 한옥근,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의 연극적 구성과 표현」, 『한국 고전극 연구』, 국학자료원,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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