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역(避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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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 노동을 기피하는 행위.

개설

부역제도는 신역(身役)과 요역(徭役)의 2가지 방식으로 민간의 노동력을 무상으로 강제 징발하는 수취제도였다. 피역은 백성들이 무거운 신역과 요역을 기피하는 행위를 지칭하였다. 특히 조선후기 신분제가 동요하고 상품화폐경제가 발전하는 가운데 피역이 성행하였다.

내용 및 특징

피역은 부역제도 운영에서 나타나는 폐단, 특히 부역을 부담하는 백성의 과중한 부담에서 비롯된 바가 많았다. 군역이나 요역을 부담하던 농민들은 군문(軍門)·아문(衙門)에 투속하여 역의 부담에서 빠져나가는 일이 흔하였다. 17세기 이후 중앙 각사 뿐 아니라, 각 지방의 관아에서도 역이 헐한 곳을 찾아서 투속하는 농민들이 많아서 문제가 되었다. 감영 이하 각 영문 및 각 읍의 군관(軍官) 등에 투속하는 자가 많았다. 특히 각 진의 소모군(召募軍)이나 남한산성 등의 모입민(募入民)에 자원해 들어가면 소속 군현에서 부담하던 신역이나 호역 등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광해군일기』 2년 12월 20일).

부잣집에 투탁하는 것도 역시 피역의 한 방편이었다. 사노(私奴)로 전락하거나, 또는 협호(狹戶)가 되어서 부잣집에 의탁할 경우 자신의 호역이 면제될 수 있었다. 혹은 권세가에 의탁하여 관의 부역 노동 징발 대상에서 자신을 숨기거나 누락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피역의 마지막 방법은 유망(流亡)이었다. 군역·요역 등 부역 노동의 과도한 부담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살던 곳을 떠나 유리하는 일이 많았다. 1632년(인조 10) 경기감사김경징(金慶徵)은 인목왕후 산릉역을 위하여 경기 지역에서의 요역 징발이 과중하다는 것을 들어서, 1개월간 부역하는 경기 연군(烟軍)의 징발을 특별히 덜어달라고 건의하였다. 그는 여러 형태의 무거운 부역에 시달리는 경기 지역 농민들은 모조리 도산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흉년에 본디 항산(恒産)도 없어서 모두 이고 지고 달아날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무거운 요역 부담을 피하고자 줄지어 달아나는 농민들의 실상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피역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으며, 결국 역에 응하는 사람은 점차 줄어들었다. 1710년(숙종 36) 당시 도성의 여러 방역(坊役) 중 가장 힘든 일로 알려졌던 부지군(負持軍)의 역에는 수만 호 가운데 불과 4,000~5,000호의 사람밖에 확보할 수 없었다. 다른 지방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숙종실록』 36년 5월 6일). 1735년(영조 11) 경기감사조명익(趙明翼)에 의하면, 양주목의 전체 민호 약 9,000여 호 중 역에 응한 사람은 단지 500여 호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양주에서 역을 면제받은 사람 중에는 비교적 신역의 부담이 가벼운 각종 보인(保人)으로 등록된 자가 많았다.

변천

지배층 관료들은 이와 같이 역을 피하는 사람이 늘고 역에 응하는 사람이 줄자 이에 대한 규제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1787년(정조 11)에 편찬된 『전율통보(典律通補)』에는 부역 노동을 피하는 자에 대한 처벌이 규정되어 있다. 즉, 호민(豪民)의 자제로서 관원의 시중드는 하인[跟隨]이 되어 역에서 빠지려는 자, 민가에서 이웃 고을로 도망가 역을 피하는 자, 그리고 이를 용납·은닉하거나 뇌물을 받고 묵인한 관원·이임(里任) 등을 모두 처벌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규제책만으로는 각종 합법·비합법적인 피역(避役)을 막아낼 수 없었다. 조선후기 신분제가 동요하고 상품화폐경제가 발전하면서, 더 이상 민간의 노동력을 파악하고 징발하는 부역제도를 원활하게 운영하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

참고문헌

  • 『전률통보(典律通補)』
  • 김용섭, 「조선후기 군역제의 동요와 군역전」, 『동방학지』 32, 1982.
  • 송양섭, 「19세기 양역수취법의 변화-동포제의 성립과 관련하여-」, 『한국사연구』 89, 1995.
  • 윤용출, 「임진왜란 시기 군역제의 동요와 개편」, 『부대사학』 13, 1989.
  • 윤용출, 『조선후기의 요역제와 고용노동: 요역제 부역노동의 해체, 모립제 고용노동의 발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
  • 이지원, 「17~8세기 서울의 방역제 운영」, 『서울학연구』 3,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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