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土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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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성(五行星) 가운데 세 번째 행성.

개설

오행성은 고대 천문학에서 다섯 행성으로 꼽던 세성(歲星)·형혹(熒惑)·진성(鎭星)·태백(太白)·진성(辰星)을 말한다. 이 각각은 춘추전국시대 후기에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오행(五行) 사상이 발달하며 목성·화성·토성·금성·수성으로 이름이 변하였다. 오행은 또한 다섯 방위[五方]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각각 동쪽·남쪽·중앙·서쪽·북쪽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행성 가운데 세 번째 행성에 해당하는 토성은 고대에 진성이라 불렀으며, 중앙을 의미한다. 토성은 흙의 성질을 가졌다고 믿었으며, 진성 외에 전성(塡星)이라고도 썼다. 의미는 진성과 전성이 모두 같으며, 토성·진성·전성 이 세 가지 말은 모두 골고루 쓰였다. 토성을 전성이나 진성으로 부른 까닭은 알기가 어려운데, 대략 찾아보면, 토성의 주천(周天) 주기가 약 28년이어서, 적도를 따라 벌려 있고 경성(經星)의 대표적 별자리가 되는 이십팔수(二十八宿) 중 매년 하나의 별자리로 들어가 메운다는 의미에서 전성이라 부른 듯하다. 또 각 28수를 진압한다는 뜻에서 진성이라 불렀을 것으로 보인다. 서양에서는 로마 신화 중 농업의 신에서 유래한 새턴(Saturn)으로 불렀는데, 흥미롭게도 토성이 지닌 농사의 흙 이미지와 서로 상통한다.

내용 및 특징

토성은 공전주기가 29.45년 즉 10,759일이고, 회합주기(會合週期)가 378.10일이며, 겉보기 등급이 -0.24등급에서 +1.2등급이다. 1610년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토성의 고리를 처음으로 관측하였는데, 당시에는 고리라기보다는 토성의 귀로 표현하였다. 현재 60개 이상의 위성이 발견되었고, 그중 53개에는 이름이 붙여졌다.

토성의 별칭인 진성은 오행성 중 중앙의 토(土) 성질을 가졌다고 보아 오행 가운데 으뜸으로 쳤다. 『회남자(淮南子)』 등에 이미 오행성을 오행 사상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착되었다. 진한시대 천문학에서 토성은 오행론(五行論)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근본이 되는 믿을 신(信)에 해당하고, 오사론(五事論)으로 모언시청(貌言視聽)의 바탕이 되는 사(思)에 해당한다고 인식하였다. 오신론(五神論)으로는 중앙 함추뉴(含樞紐)의 사자(使者)이며, 구진성(鉤陳星)의 신(神)이고, 흙의 정령이라 하였다.

『천문류초(天文類抄)』에서도 이를 따라, 전성은 방위로는 중앙이고, 계절로는 계하(季夏)이며, 오행으로는 토이고, 오상(五常)으로는 신(信)이며, 오사(五事)로는 사(思)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계절은 사계(四季)를 주관하고, 일간(日干)은 무기(戊己)이며, 십이진(十二辰)으로는 축미진술(丑未辰戌)이고, 팔괘(八卦)는 간곤(艮坤)이며, 오음(五音)은 궁(宮)이고, 상수(象數)는 오(五)이며, 오제(五帝)로는 황제(黃帝)이고, 오신(五神)으로는 후토(后土)라고 하였다.

『원사(元史)』「천문지(天文志)」에서는 토성이 59년에 2번 공전한다고 말하였고, 그동안 태양과 합도(合度)하는 것이 57번이라 하였다. 또 378일 9각과 백분각으로 16분을 지나면, 태양과 일합(一合)한다고 하였다. 원나라 때에 이르러 공전주기와 회합주기의 정밀도를 높인 관측이 이루어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진성이라 표기한 것은 7건이고, 전성은 6건이며, 토성은 207건이어서 대부분 토성으로 불렀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토성의 운행을 상세하게 관찰하여 기록하고 있다. 1393년(태조 2)에는 금성과 토성이 동방의 상성(相星)에게 대항하였다 하였고(『태조실록』 2년 10월 21일), 1397년에는 토성이 벌성(罰星) 남쪽 제1성을 범하였으므로 승려들을 모아 기양(祈禳)하는 법석(法席)을 베풀었다 하였다. 여기서 범하였다[犯]는 것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의미한다.

정종 때에는 토성이 건성(建星)을 범하였고(『정종실록』 2년 2월 2일), 토성이 건성의 남쪽을 범하니 간격이 두 자가량 되었다고 기록하였다(『정종실록』 2년 2월 13일). 태종 때에는 금성과 토성이 서로 범하였다는 성범(星犯) 현상을 기록하였고(『태종실록』 2년 3월 29일), 달이 토성을 범하였다는 월범(月犯) 현상도 기록하였다(『태종실록』 3년 11월 5일).

성종 때에는 밤 5경에 달이 토성과 동일한 36°에 있고 서로 거리가 4치가량이었다고 관측하였는데, 이는 달과 토성이 동일 구역에 위치한 성합(星合) 현상을 의미한다(『성종실록』 3년 7월 23일). 토성을 포함한 행성의 운행을 전체적으로 정밀 관측하고 있다. 1472년(성종 3) 7월 23일 천문관김응기(金應箕)와 조지서(趙之瑞)는 이달 20일에 혜성의 성체(星體)가 점점 작아지고 광망(光芒)이 매우 희미해져서 있는 듯 없는 듯하였으며, 또 해와 달과 오위(五緯) 곧 오행성은 항상 황도(黃道)로 말미암아 관측하는데, 지난달에 화성이 태미원 서쪽 담장의 남쪽 제2성과 제3성 사이에 있었다가 지금은 제3성으로 물러나 있으며, 거리가 3·4척 남짓 되는데, 다만 황도에 들어가는 것은 미리 계산할 수가 없다고 보고하고 있다(『성종실록』 21년 12월 22일).

참고문헌

  •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
  •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 『한서(漢書)』 「천문지(天文志)」
  • 『여씨춘추(呂氏春秋)』
  • 『회남자(淮南子)』
  • 『천문류초(天文類抄)』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김일권, 『(동양 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김일권,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고구려 하늘에 새긴 천공의 유토피아』, 사계절, 2008.
  • 김일권,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고대부터 조선까지 한국 별자리와 천문 문화사』, 고즈윈,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