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통위(銃筒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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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화약 병기의 발사를 담당하던 병종.

개설

1445년(세종 27) 7월 화기(火器) 방사군(放射軍)의 대량 확보와 질적 향상을 위해 설치된 특수 병종(兵種)이다. 화기 발사가 주요 임무였던 군기시(軍器寺) 소속의 별군(別軍)이 노역(勞役)에 자주 동원되면서 부실화하자,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별군 외의 장정 가운데 경외(京外)의 직역(職役)이 없는 자를 모집하여 신설하였다.

담당 직무

세종대 4군(郡) 6진(鎭)의 개척이 시작되면서 압록강 이북에 살던 야인(野人) 정벌에 효과적이었던 화기의 사용도 늘어났다. 변경에서의 화기 수요가 증가하면서 화기 관련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1445년(세종 27) 3월에는 과거에 사용하던 구식 화기를 전면적으로 다시 고쳐서 주조하는 데 성공하여 새 화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화약 증산과 제조 기술의 비밀 보장을 위하여 대궐 내에 화약 생산을 전담하는 사표국[司石+豹局]을 설치하였다. 총통위는 이러한 화기 발전책의 일환으로, 기존의 화기 발사를 전담하던 별군의 부실화를 보완하기 위해 신설된 부대였다.

신장을 따지지 않고 30세 이하의 장정 중에 달리기 능력과 힘쓰는 능력이 좋은 자를 시험 보아 2,400명을 선발하였다. 800명씩 6개월마다 3교대로 근무하게 하였다. 달마다 쌀[俸米]을 급여로 주었다. 별군의 예에 따라 그들이 근무하는 동안 집안일을 돌보고 보조해줄 인력인 봉족(奉足)을 지급하였고, 당번 때에는 잡역을 감면해 주었다.

총통위는 화기 발사 외에, 국왕이 행차할 때나 국가적인 의례를 행할 때 참여하여 호위와 의장(儀仗)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평시에는 대궐의 호위를 위한 입직(入直)과 숙직(宿直), 도성 내외의 순찰과 치안 업무도 담당하였다. 『세종실록』「오례의」에 의하며, 대가노부(大駕鹵簿) 등의 의장을 비롯하여 ‘정지급성절망궐행례의(正至及聖節望闕行禮儀)’, ‘납비의(納妃儀)’, ‘수린국서폐의(受隣國書幣儀)’, ‘취각령(吹角令)’, ‘발인의(發引儀)’ 등의 국가 전례에 두루 참여하였다.

변천

설치 초기에는 병조 소속이었다. 1448년(세종 30) 1월에는 정원이 4천 명으로 증원되었다. 1451년(문종 1) 5월 중앙 군제를 5사(司) 25령(領)으로 개편하면서, 각 영에 32명씩 분속시켰다. 1457년(세조 3) 3월에 다시 5사를 5위(衛)로 개편하면서 충좌위(忠佐衛)에 소속시켰으나, 같은 해 4월에서 7월 사이에 폐지하였다(『세조실록』 3년 7월 4일). 세조 집권 이후, 정권 안정을 위해 화기 발달과 화약 생산을 억압하면서 폐지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오례의(五禮儀)」
  • 허선도, 『朝鮮時代火藥兵器史硏究』, 일조각, 1994.
  • 강성문, 「朝鮮前期의 火器 放射軍」,『韓民族의 軍事的 傳統』, 봉명,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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