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濟衆院)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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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제중원 |
한글표제 | 제중원 |
한자표제 | 濟衆院 |
동의어 | 광혜원(廣惠院) |
관련어 | 알렌(Allen H.N.), 에비슨(Avison O.R.), 세브란스(Severance, L.H.) |
분야 | 정치/행정/관청 |
유형 | 집단·기구 |
시대 | 조선말 |
왕대 | 조선말 |
집필자 | 김성수 |
폐지 시기 | 1904년(광무 8)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제중원(濟衆院)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고종실록』 22년 2월 29일, 『고종실록』 22년 3월 12일 |
1885년(고종 22) 미국인 알렌(Allen, H.N.)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의학 의료 기관.
개설
제중원은 1885년 설립된 광혜원(廣惠院)을 개칭한 것으로, 알렌([安連], Allen, H.N.)의 주도 아래 운영된 왕립 병원이면서 동시에 선교 의료의 중심이었다. 이후 파견된 서양 의사들을 통해 서양 의학이 조선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으며, 의학당(醫學堂)을 통해 최초의 서양 의학 교육이 이루어졌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미국 북장로교로 인수되었다가 1904년 세브란스로 바뀌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9세기 후반 개항을 거친 이후 수신사, 신사유람단, 영선사 등이 일본과 중국에 파견되면서 서양 의학의 일부로 종두법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었다. 무엇보다 알렌에 의해서 서양 의학의 수용과 의학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 의사였던 알렌은 중국에 있다가 1884년 9월 조선에 입국하여 미국공사관 의사로 일하던 중 갑신정변에서 중상을 입은 민영익(閔泳翊)을 치료하였다. 이어 청일 전쟁에서 부상당한 100여 명의 청나라 병사들을 치료하여 궁중의 전의(典醫)를 겸하게 되었다.
고종은 그의 서양식 병원 건립 건의를 받아들여 혜민서(惠民署)와 활인서(活人署)를 혁파하고 1885년 2월 29일 광혜원을 설치하였다(『고종실록』 22년 2월 29일). 그리고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계(啓)에 의하여 그해 3월 12일 제중원으로 개칭하였다(『고종실록』 22년 3월 12일).
조직 및 역할
제중원은 조선에서 경비를 부담하고 관리를 파견하여 행정 사무를 처리하고 운영을 지도·감독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이에 제중원 설립 이후 구관당랑(句管堂郞)을 두고 주사(主事)를 파견하여 행정 관계 일을 처리하였다. 반면 의사의 임용을 비롯하여 의료 및 의학 교육 등의 의학적 기능은 전적으로 알렌과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가 담당하였다. 초기에는 30여 명의 주사가 파견되어 관리하였으나 1894년 갑오개혁 이후 병원의 운영을 에비슨([魚丕信], Avison, O.R.)의 제안에 따라 북장로교가 인수하게 되었다.
제중원은 1885년 4월부터 의료 활동을 개시하였으며, 초기에는 외과술이 주로 행해졌으나 점차 진료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전염병이 주요 활동이 되었다. 1895년 콜레라가 유행하였을 때에는 정부의 위촉을 받아 치료에 나서는 한편 예방법을 교육하는 등의 역할을 하였다.
한편 제중원은 진료 활동 외에도 1886년 3월에 의학당을 개설하여 조수 양성을 위해 16명의 학생을 뽑아 무료로 의학 교육을 실시하였고 이 중 12명이 본과생으로 수학하였다. 이후 의학당의 교육은 몇 차례의 고비를 겪은 후 1900년 새롭게 실시되었고, 1908년 과정을 마친 7명이 최초로 졸업하였다.
변천
1885년 제중원의 설립 이후 환자의 증가로 인해 진료가 늘어나자 알렌은 미국 감리교회 선교의사 스크랜턴(Scranton, W.B.)과 추가로 파견된 선교의사 헤론(Heron, J.W.)과 함께 진료에 종사하였다. 1886년에 미국에서 여의사인 엘러스(Elless, A.J.)가 파견되어 제중원에 부인부(婦人部)가 신설되어 왕실 여인들의 진료가 시작되었다. 1887년 알렌이 미국특파전권대사박정양(朴定陽)의 수행원으로 떠나자 헤론이 진료 업무를 전담하였고, 부인부는 호르톤(Horton, L.S.)이 맡았다. 1890년 여름 헤론이 병사하자 캐나다에서 파견된 빅톤(Victon, C.C.)이 뒤를 이었으며 1893년 에비슨에게 인계되었다.
1894년 6월 갑오개혁의 관제 개혁 때 내무아문 아래 위생국(衛生局)을 설치하여 종두(種痘), 의약, 전염병 예방 업무 등을 맡게 하는 한편 에비슨의 건의에 따라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로 이관되었다. 이후 미국인 실업가 세브란스(Severance, L.H.)의 재정 지원으로 1904년에 남대문 밖 도동(桃洞)으로 병원을 옮기고 세브란스병원이라 하였다.
참고문헌
- 김두종, 『한국 의학사』, 탐구당, 1993.
- 신동원,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 몸과 의학의 한국사』, 역사비평사, 2004.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백년 편찬위원회 편, 『의학 백년』, 연세대학교출판부, 1986.
- 신동원, 「공립 의원 제중원, 1885~1894」, 『한국문화』16, 1995.
- 주진오, 「서양 의학의 수용과 제중원: 세브란스」, 『역사비평』40,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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