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展衣)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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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전의 |
한글표제 | 전의 |
한자표제 | 展衣 |
상위어 | 육복(六服) |
하위어 | 국의(鞫衣), 연의(緣衣) |
관련어 | 선잠제(先蠶祭), 친잠(親蠶) |
분야 | 생활·풍속/의생활/의복 |
유형 | 의복 |
지역 | 대한민국, 중국 |
시대 | 고대~조선 |
집필자 | 최은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전의(展衣)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중종실록』 8년 2월 11일, 『성종실록』 24년 2월 21일 |
왕비나 내명부(內命婦) 이하가 입던 예복.
내용
전의(展衣)는 고대 중국에서 휘의(褘衣)·유적(揄狄)·궐적(闕狄)·국의(鞠衣)·전의·연의(緣衣) 등 왕후가 입던 육복(六服) 중의 하나로, 연회를 베풀거나 손님을 맞이할 때 입는 하얀색 예복이었다. 그러나 후세에는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의 부인과 경대부(卿大夫)의 처 등 모두가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전의가 등장한 것은 1513년(중종 8) 예조(禮曹)에서 중궁의 선잠제(先蠶祭)와 친잠(親蠶)을 아뢰면서 예복에 관하여 상고할 때로, 왕비는 국의를 입고 세 가지[枝]의 뽕잎을 따고, 내명부는 국의를 입고 다섯 가지의 뽕잎을 따며, 그 이하는 전의와 연의를 입고 아홉 가지의 뽕잎을 딴다고 하였다(『중종실록』 8년 2월 11일). 그런데 1493년(성종 24)의 예에 따라 명부의 옷은 아청(鴉靑)을 쓰라고 하였으므로, 조선시대의 전의는 아청이었음을 알 수 있다(『성종실록』 24년 2월 21일). 또한 1638년(인조 16) 한원부원군조창원(趙昌遠)의 딸(후의 장렬왕후)을 책봉하여 왕비로 삼았을 때, 시절이 좋지 못해 구슬 귀걸이와 전의의 예물을 감하였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전의가 왕비의 예물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용례
禮曹啓 文獻通考 漢制皇后蠶服 (중략) 展衣緣衣者九條 以授蠶母 唐制 命婦之服六翟衣者 內命婦受冊 從蠶 朝會 外命婦嫁及受冊 從蠶 大朝會之服也 靑質繡翟 編次於衣及裳 重爲九等 宋制 公 特進 列侯夫人 鄕校世婦 二千碩命婦助蠶 則靑絹上下 其制如此 今以靑衣助蠶何如? 傳曰 命婦之服用鴉靑[『성종실록』24년 2월 21일 3번째].
참고문헌
- 徐海榮, 『中國服飾大典』, 華夏出版社,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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