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빙(藏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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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기 이래 나라에서 매년 겨울 얼음을 캐고 운반하여 빙고에 저장하는 일.

개설

조선왕조에서는 삼국·고려시대와 같이 국가에서 주도하여 얼음을 저장하였다. 서울에 동빙고와 서빙고에 이어서 내빙고를 건설하였다. 동빙고는 주로 국가 제사용 얼음을, 서빙고는 왕실용 얼음과 정2품 이상의 관료들에게 나누어 줄 얼음을 저장하였다. 내빙고는 궁궐 내에 설치하여 궁중의 수요에 충당하였다. 장빙역은 매년 겨울철에 부과되는 정례적인 요역의 하나였다. 얼음을 채취하고 운반하는 일, 빙고를 수리하는 일에 민간의 노동력을 징발해서 장빙군(藏氷軍)이라는 이름으로 사역하였다.

매년 12월 초 예조에서 주관하여 장빙군을 징발하였다.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고 이를 빙고까지 운반하였다. 장빙이 끝난 후, 이듬해 춘분 이후 빙고의 문을 열어 궁궐과 각사에 얼음을 분배하기 시작하였다. 6월 1일부터 9월 말일까지는 정2품 이상의 문무관료, 삼사장관(三司長官), 육승지, 종친에게 이틀 간격으로 얼음을 배포하였다. 이외에 활인서의 병자들과 의금부·전옥서의 죄수들에게도 얼음을 나누어 주었다. 이어서 그해 겨울철에 다시 장빙하기 위하여 빙고 안팎을 풀잎으로 싸고, 빙고를 수리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조선초기 도성의 장빙역은 경기 지역이나 강원도·황해도민의 요역으로 수행되었다. 이후 성종대부터 점차 상번군이 담당하였다. 16세기 이후로는 중앙 각사와 한성부민의 요역인 방역(坊役)에 의하여 수행되었다. 동빙고의 장빙역은 17세기 전반에는 봉상시와 병조에서 쌀과 면포를 지급하고 한성부 남부 주민을 징발하여 수행되었다. 1663년(현종 4) 이후 동빙고에서는 더 이상 부역 노동을 징발하지 않았다. 대신 한성부 남부 주민에게 장빙미를 거두어, 장빙을 위한 고용 노동의 재원으로 사용하였다(『숙종실록』 28년 12월 20일). 서빙고에서도 한성부의 요역 노동에 의존하다가, 같은 시기에 고용 노동을 적용하였다. 현물 납세의 형태로 부과되었던 동·서빙고의 장빙역은 1741년(영조 17)을 계기로 완전히 폐지되었다. 내빙고의 장빙역은 고용 노동과 한성부민의 요역 노동으로 병행하여 수행되었다. 1782년(정조 6)부터는 내빙고 장빙을 위한 방역도 폐지되었다.

지방군현에서도 장빙하는 경우가 많았다. 18·19세기의 사정을 보여 주는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는 당시의 요역의 종목 중에 장빙, 곧 얼음을 저장하기 위한 요역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지방군현에서의 장빙역은 거의 대납제(代納制)의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예컨대 빙가미(氷價米)를 수취하고 이것으로 모군을 고용해서 얼음을 채취하고 운반하였다. 본래 요역의 한 형태로 수행되었던 지방군현의 장빙역도 잡역세의 한 형태로 전환된 것이었다.

담당 직무

빙고(氷庫)는 종5품아문으로 예조에 소속된 관청이었다. 관원으로는 제조(提調) 1원, 종5품 별좌(別坐), 종6품 별제(別提), 정8품 별검(別檢), 종8품 별검(別檢) 등이 있었다. 장빙을 담당할 부서로서 감역부장(監役部將)과 벌빙군관(伐氷軍官) 등이 있었다. 장빙 과정에서 별제·감역부장·벌빙군관 등이 참여하여 사고를 방지하는 등 검찰의 일을 맡았다.

변천

한성부 주민과 각사에 맡겨졌던 도성의 장빙역은 17세기 중엽 이후 현물 납세의 제도에 기초한 모립제(募立制)로 전환되었다. 한성부 주민이 내는 장빙미로 노동력을 고용하는 방식이 적용되었다. 18세기 말엽에 이르면 모든 빙고에서는 정부 재정으로 노동력을 고용하거나, 매입의 형태로 얼음을 조달·저장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참고문헌

  • 『목민심서(牧民心書)』
  • 윤용출, 『조선후기의 요역제와 고용노동: 요역제 부역노동의 해체, 모립제 고용노동의 발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
  • 이종하, 『우리 민중의 노동사』, 주류성, 2001.
  • 고동환, 「조선후기 장빙역의 변화와 장빙업의 발달」, 『역사와 현실』 14, 1994.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한국문화사대계4: 정치·경제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출판부, 1970.
  • 김동철, 「18세기 빙계의 창설과 도고활동」, 『부대사학』 19,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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