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장(印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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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집단의 일정한 표적으로 삼기 위해 단단한 물체에 문자를 새겨 개인과 집단을 상징하는 데 쓰는 도구.

개설

인장(印章)은 모두 같은 의미를 갖는 ‘인(印)’과 ‘장(章)’이 결합된 합성어로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두 글자 모두 오랜 시간 동안 사용되었으며 관인(官印)사인(私印)을 포괄하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문자가 생겨난 이래 여러 기록 매체들이 등장하고 사라졌지만 인장의 가치와 의미는 현재까지 유효하다. 또한 서명(署名)과 함께 믿음을 증명하는 도구로서 법적인 효력을 가진다.

인장은 문자를 역상(逆像)으로 제작하여 인출(印出)한다는 측면에서 활자와 비슷하지만 기원은 활자보다 앞선다. 인쇄술이 탁본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지만 표면에 안료를 바르고 압력을 이용해 찍어 내는 방식이나, 문자를 거꾸로 제작한다는 점에서 인장이 좀 더 유력한 모태로 여겨진다. 따라서 인장의 사용은 인쇄술의 기원보다 앞선다.

인장의 기원은 기원전 약 5,000년 전의 메소포타미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문자를 발명했다고 알려진 수메르 인들은 원통형 인장을 사용하였다. 둥근 인장의 몸통에 무늬를 새기고, 이를 진흙에 굴려 요철을 만든 것이 시초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원통형 인장 이후로도 인장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다. 고대 이집트의 풍뎅이 모양 인장, 고대 인도의 모헨조다로에서 출토된 인장, 그리스·로마에 이은 유럽의 반지형 인장, 태국의 상아로 만든 불탑 인장, 이란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제국의 원통형 인장 등 전 세계적으로 각양각색의 인장이 나타난다.

다양한 세계의 인장들이 어떤 경로를 따라 전파되었는지는 규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몇 가지 공통점을 언급하면 첫째, 견고한 물질에 무늬나 글자를 새겨 요철을 만든다는 점, 둘째, 날인할 때 진흙을 사용하였다는 점, 셋째, 개인이나 집단을 나타낸다는 점, 넷째, 물건이나 문서의 봉인을 목적으로 하였다는 점 등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초기 인장의 모습은 대부분 원통형으로 진흙에 굴려 요철을 만드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이러한 사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인장의 밑면에 새겨 찍는 방식만이 나타난다. 또한 현재까지 인장을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동아시아 3국을 비롯하여 베트남·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으며, 예술의 한 장르로 여겨지고 있는 나라는 한국·중국·일본 등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우, 낙랑의 인장과 봉니(封泥)는 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귀속되었고, 삼국시대 이전의 책봉인(冊封印)은 국내외의 주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려동인(高麗銅印)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하여 고려대학교, 경북대학교 등 대학박물관, 성암고서박물관, 온양민속박물관 등 사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거나 개인이 소장한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 왕실의 인장은 주로 문화재청 소속의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관인은 남아 있는 유물이 적은데, 국립고궁박물관을 포함하여 일부 대학 박물관에 고려와 조선의 관인이 소장되어 있다.

내용 및 특징

인장 유물은 1차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한편, 답인(踏印)된 사례가 적은 고대나 중세에 해당한다면 그 가치는 더욱 크다. 인장은 찍어서 효력을 발휘하므로 답인된 사례가 중요하다. 인장이 찍혀진 대상은 점토·와당·전돌·도자를 포함한 종이 외의 물질, 문서, 책, 간찰, 서화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인영(印影)을 집중적으로 모은 인보(印譜)는 인장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한국의 인장은 크게 국가와 왕실 새보(璽寶), 관청과 관리의 관인, 개인의 사인으로 분류된다. 새보는 국가의 상징으로서 왕위 선양, 외교 문서에 사용하는 국새와, 국왕을 포함한 왕실의 공식 인장인 어보로 나뉜다. 국새는 조선초기에 조선왕보(朝鮮王寶)를 국내에서 자체 제작하여 사용하였고, 명·청과의 책봉 관계에 의해 각각 3차례 인수하였다. 갑오개혁 시기에는 일본 관련 국서에 사용하고자 여러 차례 제작하였고, 대한제국 시기 청과의 사대 관계를 끝냄과 더불어 황제국의 위상에 걸맞은 여러 국새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어보 또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책봉과 존호, 시호의 가상 및 추상에 왕실 인사의 위호(位號)를 나타내고자 만든 경우, 둘째, 국왕 문서와 서적 반사(頒賜)를 위한 목적으로 제작한 경우이다. 왕실 인사의 책봉 때에 제작된 인장은 국왕과 왕비 외에는 모두 ‘인’ 자를 써서 ‘보(寶)’ 자와 구별하였고, 존호와 시호, 휘호와 관련한 인장은 모두 ‘보’로 한 점이 특징이다. 국왕 문서와 서적 반사를 위한 어보는 주로 세종 대에 정비되었다.

어보의 문구는 중원의 제도를 모방한 경우가 많고, 국내에서 자체의 문자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대부분 ‘보’ 자를 사용하였지만 ‘인’ 자나 ‘기’ 자 등 소수의 특수한 사례도 있다. 조선시대의 인장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포함된 기사가 근간이 된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대전회통(大典會通)』 등 주요 법전에는 새보와 관인 사용 규정을 명확히 한 기록이 전하고, 각종 문집에 인장의 연원과 제작, 사용에 대한 단편적 기록이 전한다. 또한 왕실 인장의 조성과 개조에 대한 각종 의궤는 중요한 자료이다.

관인은 중앙과 지방의 관서나 군영에서 공무에 사용하는 인장이다. 조선시대의 경우 크게 경관인(京官印)과 외관인(外官印)으로 나눌 수 있다. 경관인은 육조(六曹)를 포함한 중앙 기구의 공식 인장이며, 외관인은 왕명으로 팔도에 파견된 각 지방관의 인장이다. 경관과 외관의 모든 관인은 국가의 제도와 관련되므로 예조(禮曹)의 계제사(稽制司)에서 관할하였다. 또한 『추관지(秋官志)』, 『심리록(審理錄)』, 『포도청등록(捕盜廳謄錄)』 등 관찬 자료에는 인장의 위조에 대한 다양한 사례가 실려 있어, 형정(刑政) 및 재판의 실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사인은 주로 서화나 서책·간찰 등에 사용하는 개인의 인장으로 성명자호인(姓名字號印), 사구인(詞句印), 수장인(收藏印), 감상인(鑑賞印), 봉함인(封緘印), 부인도서(婦人圖書)로 나눌 수 있다.

변천

인장은 견고한 물질에 문자가 포함된 형태로 전하므로 금석학(金石學)의 범주에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인학(印學)·새인학(璽印學)·전각학(篆刻學) 등으로 불리며 기원, 종류, 용도, 제작 기법, 제도, 예술적 가치가 주요 연구 대상이다. 동아시아의 인장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북송대(960~1127)부터 시작되었으며, 금석학의 흥기와 함께 고인(古印)의 수집과 저술이 활발하였다. 금석문을 수록한 저술의 경우 고대의 새인이 포함되거나 인문(印文)과 유식(鈕式)을 모사하여 실은 경우가 있었다.

인장의 수집과 연구는 송대부터 금석학의 범주에 포함된 형태로 시작되어 900여 년의 전통을 가진다. 또한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인보가 출현하였고, 원대에 들어 본격적인 연구서가 등장하였다. 이 시기의 연구는 주로 문자학의 측면에서 전서와 예서의 기원과 전개를 비롯하여, 인장을 제작하고 문자를 다루는 방법을 제시하여 이론의 체계를 잡았다. 명대에 들어 새인학에 관한 논저가 한층 증가하여 인장의 발달과 제도를 연구하고, 고인의 단대(斷代) 및 진위를 고증하는 데 큰 진보를 보였다.

청대 중기와 후기에는 관인과 사인 및 봉니를 비롯하여 대량의 비판(碑版), 기물(器物), 천폐(泉幣) 등 고대 유물이 출토되어 금석학의 진전에 촉매 구실을 하였다. 청대에 출토된 관인과 사인 및 봉니는 사서(史書)를 증명하는 1차 사료로서 고문자학은 물론 고대의 관제(官制), 문서 제도, 지명의 변천 등에 대한 증거로 활용되었다. 인장의 역사·제도·종류·명칭 등을 정리할 수 있었고, 다량의 고인보(古印譜)를 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이러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다수의 인학가(印學家)와 전각가(篆刻家)를 비롯하여 전각의 유파를 생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 那志良, 『璽印通釋』, 商務印書館,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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