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사(儀制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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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명·청대 예의(禮儀), 종봉(宗封), 학교, 과공(科貢) 등을 주관하던 예부의 속사.

개설

의제사의 정식 명칭은 의제청리사(儀制淸吏司)로, 각종 의식과 의절(儀節)을 담당하고, 봉작을 주관함으로써 조선의 대중국 관계에서 핵심 관청으로 인식되었다. 조선은 왕의 승습, 세자 책봉, 변무, 의례문의 등과 관련하여 의제사를 대상으로 활발한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체적으로 의제사는 조선의 요구에 대하여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는데, 이는 관료적인 입장에서 엄격한 잣대를 적용시켰기 때문이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명대 초기에 예부는 의부(儀部)·사부(祠部)·주객부(主客部)·선부(膳部) 등 4부를 소속 관청으로 두었다. 1396년(홍무 29) 의부는 의제청리사(儀制淸吏司)로 개칭되었으며, 점차 낭중·원외랑 등을 설치하여 편제를 갖추었다. 의제청리사는 낭중 1명, 원외랑 1명, 주사 2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초기부터 설치되었던 수령관(首領官)·주사(主事)를 사관(司官)·사(司)로 고쳤다. 1441년(정통 6)에 의제사에 주사 1명을 추가하여 의제사의 업무를 기존 편제의 관원과 함께 처리하도록 하였다. 1581년(만력 9)에 의제사의 주사 1명이 혁파되었다가 1583년에 복설되었다.

청대에는 낭중을 만주인 2명, 한인 1명을 두었으며, 원외랑은 만주인 3명, 한인 1명을 두었으며, 주사는 만주인과 한인을 각 1명씩 두었다.

조직 및 담당 직무

명대 의제사는 정단동지백관조하의(正旦冬至百官朝賀儀) 등 조하의례(朝賀儀禮), 상조어전의(常朝御殿儀)·제왕조견의(諸王朝見儀) 등 조의(朝儀), 오군도독부합주계(五軍都督府合奏啓) 등 제사주사의(諸司奏事儀), 제사조근의(諸司朝覲儀), 황제의 등극, 책립, 상존호(上尊號), 경적(耕耤), 시학(視學), 대사례(大射禮), 책사(策士), 친잠(親蠶), 경연, 순수(巡狩), 친정(親征), 논공행상, 봉작(封爵), 영조(迎詔), 혼인, 종학(宗學), 번왕래조의(蕃王來朝儀), 관복(冠服), 연례(宴禮) 등의 의례를 담당하고, 의례에 사용되는 악기, 악장(樂章) 등을 관장하였다. 또한 표전의식(表箋儀式), 공거(貢舉), 학교, 향음주례(鄉飲酒禮), 정표(旌表), 인신(印信), 건언(建言), 회의(會議), 절가(節假), 양로(養老), 고아와 가난한 이에 대한 구휼, 자궁금례(自宮禁例)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청대 의제사는 명대 의제사 업무를 계승하면서 특히 가례(嘉禮), 군례(軍禮) 등 조정에서 행해지는 모든 의례를 관장하여 그 명칭 및 격식을 분별하여 모든 관청에 반포하였다.

의제사는 조선의 대중국 관계에서 발생하는 의례와 봉작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책봉관련 외교 사안에 대하여 조선이 필수적으로 외교적 접촉을 가졌던 관청이었다. 중종반정 이후 중종의 승습을 위한 외교문서를 접수하고 황제에게 전달하기 위한 제본 작성을 의제사에서 담당하였다(『중종실록』 3년 1월 5일). 또한 세자의 책봉에 대한 세세한 점검 및 의견 제시도 의제사에서 담당하였다(『선조실록』 28년 10월 20일). 조선은 예학과 의절(儀節)을 주관하였던 의제사에 예학에 대한 문의 및 의절에 대한 대조를 주문으로 요구하기도 하였다(『명종실록』 11년 10월 8일). 조선후기 조·중 관계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외교문서의 격식에 관련하여 의제사는 표문과 같이 황제에게 제출되는 외교문서의 격식을 정하고 이를 조선에 통지하였다(『정조실록』 19년 11월 19일).

의의

조공 체제에서 외교 활동 및 외교 절차에 있어 의례는 매우 중요하였다. 그러한 면에서 의제사는 조선의 대중국 외교에서 가장 핵심 관청이었다. 의제사는 조선에 전달되는 중국의 외교문서를 대부분 작성하며, 북경에서 조선의 외교문서를 접수하여 황제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의 주문은 왕실 관련 사안이 많아서 의제사는 중국의 대조선 외교정책 및 입장을 보여 주는 기준점이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대명회전(大明會典)』
  • 『대청회전(大淸會典)』
  • 『동문휘고(同文彙考)』
  • 李雲泉, 『朝貢制度史論』, 新華出版社, 2004.
  • 김경록, 「조선후기 사대문서의 종류와 성격」, 『한국문화』 35, 2005.
  • 김경록, 「조선시대 대중국 외교문서의 접수·보존체계」, 『한국사연구』 13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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