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관(首領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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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앙관청의 행정 실무자 또는 지방관을 보좌하던 직책.

개설

조선시대 관료군을 구분하는 방법은 당상관, 당하관과 같이 품계로 분류하는 방식과 장관(長官), 좌이관(佐貳官), 수령관(首領官)과 같이 직책으로 구분하는 방식이 있다. 수령관은 직책으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중앙관청에서는 하급의 행정 실무자, 지방에서는 관찰사,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 목사 등을 보좌하는 종5품의 도사(都事)와 판관(判官) 등을 수령관이라고 했다.

내용 및 특징

수령은 사람의 머리[首]와 목[領]을 뜻한다. 중국 원나라에서 기원한 용어로 하급 행정 실무를 담당한 한인(漢人) 관리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조선에서는 중앙관청의 실무자와 상급 지방관을 보좌하는 직책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지방관의 경우, 관찰사와 수령은 왕의 권력을 위임받아 통치한다는 의미이다. 관찰사의 수령관은 종4품과 5품으로 군현의 수령보다 품계가 높지만, 직책상으로 수령관은 왕의 권력을 위임받은 자가 아니라 관찰사와 수령을 보좌하는 혹은 그 휘하에서 실무를 맡은 관원이라는 의미이다.

중앙관청에서 수령관은 관청의 책임자가 아닌 행정 실무자의 범주에 든다는 의미이다. 이들을 관청의 수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서리는 포함되지 않았다. 조선에서 실제 관원의 위계나 의례에서는 당상관, 당하관처럼 품계로 나누는 구분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직책으로 구분하는 수령관이라는 범주는 잘 사용되지 않았다.

직책상의 범주가 활용된 경우는 관사의 행정 규식이나 행정 절차, 관청의 관원을 함께 처벌할 때였다. 문서 발송에 관한 규식과 같은 경우는 관청마다 관원의 명칭이 달라서 어느 관원이 문서를 수령한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하급 실무자를 통칭하는 수령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형률에서도 관청의 잘못이나 부정을 처벌할 때는 관품이 아니라 직책에 따라 책임과 처벌의 경중을 구분해야 했다(『세종실록』 17년 6월 24일).

『대전통편』에 의하면 같은 관청의 관료가 국가의 공익을 해한 공죄(公罪)를 범한 경우에 당상관이 있는 관청에서는 행수(行首)가 장관이 되고 차관 이하가 좌이관이 되며 당하관이 수령관이 된다. 성균관과 같은 관청에서는 7품 이하관이 수령관이 된다. 당상관이 없는 관청에서는 행수가 장관이 되고 차관 이하가 좌이관이 되며 7품 이하가 수령관이 된다. 2등급의 관원만 있는 곳에서는 장관과 수령관으로만 나누고, 같은 등급의 관원만 있는 곳에서는 수령관으로서만 논한다고 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지방의 수령관에는 종5품직인 도사, 종9품직인 심약(審藥)검률(檢律), 정3품직인 병마우후(兵馬虞候), 정4품직인 수군우후(水軍虞候), 정6품직인 병마평사(兵馬評事), 종4품직인 서윤(庶尹), 종5품직인 판관과 병마판관이 있었다. 도사·심약·검률은 관찰사영과 병마절도사영에 설치되어 각각 관찰사의 행정·형률사와 관찰사·병마절도사의 의약사를 보좌하였다. 병마우후·병마평사·수군우후는 전임인 병마절도사영과 수군절도사영에 설치되어 각각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의 군정을 보좌하였다. 서윤, 판관, 병마판관은 각각 함흥·평양부윤부, 요충지 도호부 이상의 군현, 종성도호부에 설치되어 각각 그 군현의 수령인 부윤, 부윤·대도호부사·목사·도호부사를 보좌하고 사송(詞訟)과 민사를 관장하였다. 설치된 관직 수를 보면 도사는 8도에 각 1직씩 8직, 심약은 각 도에 1~3직씩 16직, 검률은 8도에 각 1직씩 8직, 병마우후는 충청도 등 5도에 1~2직씩 6직, 병마평사는 영안·평안도에 각 1직씩 2직, 수군우후는 충청·경상·전라도에 1~2직씩 5직, 서윤은 영안·평안도에 각 1직씩 2직, 판관은 경주 등 4부윤부·안동 등 3대도호부·18목·수원 등 9도호부에 각 1직씩 34직, 병마판관은 영안도에 1직으로 총 84직이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한충희, 『조선초기의 정치제도와 정치』, 계명대학교출판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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