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고(儀仗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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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용으로 사용되는 부(斧)·월(鉞)·개(蓋)·선(扇) 등의 보관과 의례 시 의장을 담당하던 병조의 속사(屬司)인 승여사(乘輿司)의 부속 기관.

개설

고려시대의 위위시(衛尉寺)를 계승하여 설치한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병조에 소속된 승여사의 부속 기관이었다. 조선시대 의장용으로 사용하던 도끼 모양의 의장 부(斧)와 월(鉞), 우산 모양의 의장 개(蓋), 부채 모양의 의장 선(扇)과 각종 의장에 동원되는 의물(儀物)을 관리하였다. 의례 시 소속 의장군을 배치하여 의장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설립 경위는 알 수 없으나, 국가의 각종 의례 시 의장 담당을 목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직 및 역할

의장고의 장관은 병조 소속의 승여사를 관장하던 낭청이 겸하였다. 낭청 2명은 궐내에 입직하는 군영의 부장(部將)이 담당하였다. 이는 의장고가 궐내 군영의 입직소와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창덕궁의 경우, 의장고는 서쪽 담장 근처 훈련도감 군사의 입직소 근처에 있었다.

이속(吏屬)은 『육전조례(六典條例)』에 따르면, 서원(書員) 2명, 고지기[庫直] 1명, 의장군(儀仗軍) 170명, 등롱군(燈籠軍) 40명, 양산선군(陽弄扇軍) 20명 등이었다. 의장고 소속 이속들에게는 매년 병조에서 보수를 지급하였는데, 서원에게는 매월 4냥을, 의장군 등 군인에게는 매년 무명 6필을 지급하였다.

의장고는 평상시에는 각종 의물 관리와 함께, 중국 황제가 선물하는 의물을 받아 관리하였다. 또한 의장군의 복식도 관리하였던 듯한데 낭청이 이를 관리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처벌받기도 했기 때문이다(『광해군일기』 11년 9월 18일).

의장고에서 평상시 관장하던 의물은, 대전(大殿) 의장 167병(柄)과 금고(金鼓) 4좌(坐)이고, 내전 의장이 각 55병이며, 세자궁 의장이 35병, 세손궁 의장이 19병이었다. 또한 조칙(詔勅)이나 표전(表箋) 등을 받들 때 사용하는 황의장(黃儀仗)은 각 32병이고, 세의장(細儀仗)은 30병이었다. 매년 6월과 12월에 병조의 일군색(一軍色)낭청이 점검하며, 만약 파손된 것이 발견되면 호조에서 다시 조사하여 수리하였다.

변천

의장고에서 담당하는 의장은 행사 내용 및 규모에 따라 구분된다. 종묘(宗廟)사직(社稷)행행(行幸)할 때에는 대가의장으로, 문묘(文廟)영희전(永禧殿)에 행행할 때에는 법가의장으로, 성(城) 내·외에 행행할 때에는 소가의장으로 행하였다.

의장고는 이들 세 유형의 의장을 관장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동안 법가의장이 제외되고 대가의장과 소가의장만을 사용하였다. 이에 1744년(영조 20) 진연(進宴) 때 노부와 의장을 배치하면서, 대가·소가의장 외에도 법가의장까지 담당하도록 『오례의(五禮儀)』에 규정하였다(『영조실록』 20년 8월 14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육전조례(六典條例)』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