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목희(輪木戲)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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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윤목희 |
한글표제 | 윤목희 |
한자표제 | 輪木戲 |
동의어 | 척윤목희(擲輪木戲) |
관련어 | 득호자(得虎者), 승경도(乘卿圖), 쌍륙(雙六), 저포(樗蒲), 종정도(從政圖), 투자(骰子) |
분야 | 생활·풍속/풍속/놀이 |
유형 | 의식·행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김자운 |
시행기관 | 예조 |
시행장소 | 사정전, 충순당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윤목희(輪木戲)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14년 6월 8일, 『세조실록』 11년 12월 5일, 『성종실록』 10년 12월 29일, 『중종실록』 8년 12월 29일, 『명종실록』 16년 12월 29일 |
편을 나누고 윤목을 던져서 나온 글자나 점수대로 말을 움직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
개설
윤목(輪木)은 여섯 면에 숫자나 글자를 새긴 정육면체의 투자(骰子), 또는 다섯 모서리에 눈금으로 하나부터 다섯까지 숫자를 표시한 나무막대로 일종의 주사위를 말한다. 윤목희(輪木戲)는 먼저 편을 갈라 편을 정한 후, 순번에 따라 윤목을 던져서 얻은 숫자나 글자대로 말판의 말을 옮겨서 승부를 겨루는 놀이다. 윤목을 던져 말을 움직이므로 척윤목희(擲輪木戲)라고도 한다. 이와 관련된 놀이로는 저포(樗蒲)나 쌍륙(雙六) 놀이가 있었고, 승경도(乘卿圖)·종정도(從政圖) 등의 놀이에도 사용되었다. 조선중기까지는 주로 투자를 사용하다가 이후 다섯모의 윤목을 쓰기 시작하였다.
연원 및 변천
백제 때의 연희 중에 저포희(樗蒲戱)가 있다.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악고(樂考) 2」 역대악제(歷代樂制)와 『문헌통고(文獻通考)』에 백제 고유놀이로 투호·위기(圍碁)·저포·악삭(握槊)·농주(弄珠) 등이 있다고 하였다. 저포희는 나무를 깎아 말을 5개 만들고 주사위를 던져 승부를 가린다고 하였다. 쌍륙은 두 개의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에 따라 판에 놓인 말을 움직여서 누가 먼저 궁에 이르는가를 겨루는 놀이이다. 1432년(세종 14) 6월 8일에 명나라 사신이 쌍륙을 요청하므로 이를 주어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세종실록』 14년 6월 8일).
1465년(세조 11) 왕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종친과 재추(宰樞)를 불러 술자리를 베푸는 자리에서 내구마(內廐馬) 한 필을 가져다가 재추 등에게 윤목희 내기를 하게 하였는데, 한명회(韓明澮)가 상을 차지하였다고 한다(『세조실록』 11년 12월 5일). 1479년(성종 10)에 왕이 선정전(宣政殿) 남쪽 처마 서쪽 모퉁이에 나가서 나례(儺禮)를 구경한 후 종실(宗室)에 명령하여 윤목을 던지는 노름으로써 물건 내기를 하도록 했는데, 아침부터 시작하여 인경(人更) 때에 이르러서야 그만두었다고 한다(『성종실록』 10년 12월 29일).
이후로 관나(觀儺) 후에 윤목희를 한 점이 주목되는데, 권벌(權橃)의 『충재선생문집(冲齋先生文集)』에도 1507년(중종 2) 12월 28일에 왕이 사정전 처마로 납시어 나례와 윤목희를 구경한 다음 제군(諸君)과 재상들에게 상으로 호피, 표피(豹皮), 녹피, 마장(馬裝), 각궁(角弓) 등을 나누어 주었다고 하였다. 1513년(중종 8) 12월 29일에 왕이 입시한 재상들에게 윤목 던지는 놀이[擲輪木戲]를 하게 하여 득호자(得虎者)에게 술을 하사하되 차등을 두었다고 하였다(『중종실록』 8년 12월 29일). 득호자, 즉 범을 얻은 자라고 한 것은 저포희의 승부 결과로 보인다. 왜냐하면 저포는 나무로 만든 투자 다섯 개를 가지고 놀던 옛날 놀이로, 각종 짐승을 가지고 말을 구분하였기 때문이다.
1561년(명종 16)에도 왕이 충순당(忠順堂)에 나아가 나례를 관람하고 시신(侍臣)들에게 예로부터 나례를 관람할 때에는 윤목희를 하였으므로 그 관행을 따르라고 하였다(『명종실록』 16년 12월 29일).
종정도는 승경도·종경도라고도 하는데, 벼슬살이를 그린 도표라는 뜻이다.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의하면 이 놀이를 하륜(河崙)이 처음 만들었다고 하였고, 『한고관외사(寒臯觀外史)』에는 중국의 관제를 익히기 위해 중국 종정도를 가져온 것이라고 하였다. 종정도 놀이는 조선초기에 이미 들어와 놀았던 것으로 이전부터 있던 저포희와 공존해 온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모두 윤목희로 불렀던 것 같다. 또한 윤목은 처음에는 정육면체의 투자였다가 이후 조선의 관제를 그린 종정도가 나오면서 다섯모의 윤목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절차 및 내용
권필(權韠)의 『석주집(石洲集)』이나 임상덕(林象德)의 『노촌집(老村集)』에는 종정도 말판과 놀이 방법을 설명한 「종정도설(從政圖說)」이 있다. 이에 의하면 윤목은 세 치 되는 나무를 깎아 정육면체를 만든 다음 각 면에 글자를 새기는데, 덕(德)·문(文)·무(武)·훈(勳)·탐(貪)·연(軟) 등이다. 이런 주사위를 모두 3개 만든다. 덕이 가장 높고, 그다음이 문과 무이며 음직을 얻는 훈이 그다음이다. 탐과 연은 제일 나쁜 것이다. 그 격에 따라 말을 진행하다가 나이가 많고, 덕이 소(卲)하고, 작(爵)이 극(極)에 이르면 은퇴한다.
여러 명이 편을 갈라 노는데 한 사람은 말판 옆에서 이를 감독한다. 몇 폭을 이어 붙인 종이에 관반(官班)과 작질(爵秩)을 적고, 올리고 낮추는 법과 물리고 나가는 법을 덧붙여 적은 말판이 종정도다. 주사위를 던질 때 손에 힘을 주고 전심(專心)을 한다. 나오는 글자에 따라 관반과 작질을 올리고 낮추어 그 귀천에 따라 승패를 결정한다. 승부가 나면 각자 소매를 단정히 하고 물러나며, 이겼다고 큰 소리 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 『노촌집(老村集)』
-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 『문헌통고(文獻通考)』
- 『석주집(石洲集)』
- 『용재총화(慵齋叢話)』
- 『충재선생문집(冲齋先生文集)』
- 『한고관외사(寒臯觀外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