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석전문선왕의(王世子釋奠文宣王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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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가 문묘(文廟)에서 공자(孔子)에게 제사하는 석전(釋奠)을 주관하여 거행하는 의례.

개설

매년 음력 2월인 중춘(仲春)과 8월인 중추(仲秋) 상정일(上丁日)에 왕세자가 성균관(成均館)의 문묘에 나아가 공자에게 제사하는 의식으로, 국가 사전(祀典) 체계에서 중사(中祀)로 분류되었다. 상정일은 날짜의 간지에 정(丁)이 들어가는 첫 번째 날이다.

연원 및 변천

1414년(태종 14) 7월에 왕세자와 유사(有司)가 주관하는 석전과 각 주현에서 거행하는 석전의(釋奠儀) 의식을 처음 제정하고 반포하여 시행하였다(『태종실록』 14년 7월 11일). 이어 1417년(태종 17) 2월에 예조(禮曹)에서 왕세자 주관의 석전 의식을 다시 제정했고(『태종실록』 17년 2월 7일), 이 내용에 따라 같은 달 10일에 왕세자가 문묘에 나가 석전제를 거행하였다(『태종실록』 17년 2월 10일). 왕세자 주관의 석전 의식은 이후 제도적인 정비 과정을 거쳐 『세종실록』「오례」에 ‘왕세자석전문선왕의(王世子釋奠文宣王儀)’라는 이름으로 실렸으며(『세종실록』 오례 길례 의식 왕세자 석전 문선왕의), 성종대에 편찬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도 같은 이름으로 수록되었다. 또, 1897년(광무 1) 대한제국 선포 이후 편찬된 『대한예전(大韓禮典)』에서도 명칭만 ‘황태자석전문묘의(皇太子釋奠文廟儀)’로 바뀌었을 뿐 세부적인 절차는 『국조오례의』와 동일하다.

절차 및 내용

왕세자가 주관하는 석전의 준비는 5일 전에 왕세자와 제관(祭官)들이 재계(齋戒)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재계는 산재(散齋) 3일과 치재(致齋) 2일을 시행하였다. 산재는 제관이 치제에 앞서 몸을 깨끗이 하고 행동을 삼가는 것으로, 일상 업무는 정상적으로 수행했으며 평소의 자기 집의 침소에서 잤다. 치재는 산재 이후 제사가 끝날 때까지 재계하는 것으로, 치제 기간에는 전적으로 제사에 관련된 일에만 전념하였다.

석전 2일 전에는 문묘의 안팎을 청소하고 왕세자 및 제관들이 제사 전에 대기하는 장막을 설치하였다. 석전 1일 전에는 석전에서 음악을 연주할 악기들을 배치하고 왕세자의 판위와 제관들의 위를 설치하며, 석전에서 사용할 희생(犧牲)을 점검하였다. 또 왕세자는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시위(侍衛)를 받으며 궁을 나서[出宮] 문묘로 나갔다.

석전 당일에는 전사관(典祀官)과 묘사(廟司)가 제례에 사용할 그릇인 찬구(饌具)를 진설(陳設)하고, 제관들과 여타 관원 및 학생들은 정해진 복식을 갖춘 다음 각자 정해진 자리로 나갔다. 이어 제향 때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亞獻官)과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관(終獻官)·여러 신위에 술을 부어 놓는 예를 담당하는 분헌관(分獻官) 등이 자리에 서고, 마지막으로 왕세자가 판위에 나감으로써 석전 준비는 모두 끝난다.

석전 의식은 먼저 사배례(四拜禮)를 한 다음 향과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奠幣禮)를 실시하였다. 왕세자가 먼저 문선왕(文宣王)인 공자의 신위에 나가 향과 폐백을 올렸으며, 이어 연국복성공(兗國復聖公)인 안자(顏子)→성국종성공(郕國宗聖公)인 증자(曾子)→기국술성공(沂國述聖公)인 자사(子思)→추국아성공(鄒國亞聖公)인 맹자(孟子)의 순서로 4성(四聖)에게 향과 축을 올렸다.

전폐가 끝나면 각 신위에 술을 올리는 작헌(酌獻)을 하는데, 초헌(初獻)·아헌(亞獻)·종헌(終獻) 등 세 번 실시하였다. 왕세자가 주관하는 석전에서는 왕세자가 첫 잔을 올리는 초헌관(初獻官)을 맡았고, 아헌관은 정2품 대신이, 종헌관은 정3품 당상관이 담당하였다. 술잔을 올리는 순서는 전폐와 동일하게 먼저 문선왕에게 올린 다음 안자→증자→자사→맹자의 순으로 진행했으며, 아헌·종헌도 초헌과 같은 방식으로 시행하였다. 국왕이 문묘의 향사나 작헌을 주관하는 경우 문선왕에게만 국왕이 직접 술을 올리고 나머지 4성에게는 별도의 전작관(奠爵官)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왕세자 주관의 석전에서는 왕세자가 공자와 4성 모두에게 직접 술을 올렸다.

작헌이 끝난 다음에는 왕세자가 복주(福酒)를 마시는 음복(飮福), 제관들에게 고기를 나누어 주는 수조(受胙)를 실시하였다. 다음으로 제기를 거두어들이는 철변두(撤籩豆)를 하는데, 제기를 모두 거두는 것이 아니라 변(籩)과 두(豆) 하나씩만 위치를 약간 옮겨 놓았다. 이어 왕세자가 사배를 하고 제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사배를 함으로써 석전 의식을 마쳤다. 의식이 끝나면 헌관(獻官)과 제관들은 석전에서 사용한 폐백을 묻는 것을 관람했는데, 이를 망예(望瘞)라고 한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대한예전(大韓禮典)』
  • 국립문화재연구소 편, 『석전대제』, 국립문화재연구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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