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역(癘疫)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여역 |
한글표제 | 여역 |
한자표제 | 癘疫 |
관련어 | 여귀(癘鬼), 전염병(傳染病) |
분야 | 문화/의학·약학/병명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고대~조선 |
집필자 | 원보영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여역(癘疫) |
민간 전염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
개설
한자의 연혁을 밝힌 중국의 사전인 『설문해자』에서 ‘여(癘)’는 악질(惡疾)이나 악창(惡瘡)과 함께 나병(癩病), 즉 한센병을 의미하는 다소 중의적(衆意的)인 글자로 설명되어 있다. 또한 ‘역(疫)’은 ‘민개병야(民皆病也)’로 민간에 퍼진 질병, 유행병, 여귀(癘鬼)에서 비롯된 것 등으로 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창진(瘡疹)이나 두창(痘瘡), 홍역 등 구체적으로 병명을 기록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닐 때에는 역질·염질(染疾)·여질(癘疾) 등 다른 용어들과 함께 여역(癘疫)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 이렇듯 『조선왕조실록』에서 여역은 글자의 뜻풀이나 연혁뿐만 아니라 확인되는 용어의 쓰임에서도 일반적인 전염병을 가리키는 총칭어로서 가장 많은 빈도를 보이고 있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에 여역, 즉 전염병의 추이는 모든 왕대에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두 차례의 전란, 즉 1592년 임진왜란과 1636년 병자호란을 제외하고 전염병은 특히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 사이의 시기에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조선전기부터 명종대까지는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전염병의 발생이 극심하였는데, 특히 황해도와 개성 일대에서는 ‘악병(惡病)’이라 하여 병명조차 명확하지 않은 풍토병이 자주 발생하여 다양한 치병(治病) 방법이 논의되기도 하였다.
여역의 구체적인 질환이 기록된 예를 통해 각 시기 전염병의 발생 형태를 살펴보면, 조선전기에는 온역(瘟疫)과 창진(瘡疹), 전술한 황해도 등지의 악병 등이 있었다. 또 1624년(인조 2)에 크게 유행한 홍역은 특히 영조와 정조대 여역의 하나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또 두창, 즉 천연두는 현종대 이후 잦은 유행성 질환으로 나타나고 있고, 고종과 순종의 재위 연도에는 콜레라, 즉 호열자가 창궐하였다.
그밖에 광해군대의 당홍역(唐紅疫), 명종·선조대의 학질, 숙종대의 반진(班疹)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당대 여역의 주요 질환이었다. 연산군·숙종·영조·순조대에 등장하여 질병의 명칭조차 불분명한 민간의 전염병으로 기록된 괴질도 그 하나이다. 또한 가축의 전염병 중 우역(牛疫) 등은 여역과 함께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말에 이르러서는 의학 지식의 보급과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괴질이 호열자라는 특정한 질환으로 밝혀지는 등 여역의 표현도 달라지게 되었다.
변천
1700년대 이후에는 삼남, 즉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의 전염병 발생 빈도가 높게 나타났다. 그 원인으로 연구자들은 조선시대 지역별 인구 증가 추이를 비롯하여 조선후기의 시장 개설 등 인구의 이합집산이 빈번했던 상황을 가장 큰 요인으로 고려하고 있다.
또한 여역이 빈발한 원인으로 이와 같은 사회적인 변화 외에도 기상의 변화 등 자연적인 영향 또한 여러 각도에서 연구되고 있다. 일례로 자연 재해 중 강우와 가뭄이 극심했던 시기를 여역이 발생한 시기와 비교해 보면 유의미한 결과를 보인다. 15세기 중반과 16세기 중반에는 강수 끝에 다시 가뭄이 이어졌고,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까지는 계속적인 강우, 또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는 극심한 가뭄기였다. 이를 여역의 발생 추이와 비교해 보면, 강우가 계속된 시기가 가뭄기보다 더 질병이 극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 시기의 자연 재해는 1차적으로는 농업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다시 질병이라는 2차적인 재난의 폐해를 가져왔다.
의의
『조선왕조실록』에서 여역, 역려(疫癘), 윤질(輪疾), 역질, 여질 등 민간에서 유행하던 전염병과 관련한 기록은 한국 역사 속 질병사의 한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용어들이다. 여역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시기는 조선시대 자연 재해에 대한 기록과 함께 당대 기후 현상과 그 영향을 연구하는 데 초점이 된다. 또 여역의 사회적 원인이 되는 민간의 생활 습속 등은 일기 자료 등의 문헌 연구를 통해서 보다 섬세하게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여역에 대한 조선 왕조의 대민 치료 대책은 당대 의료 복지 차원에서, 그리고 민간의 여역 대처 노력은 민속 의료의 연구 대상으로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참고문헌
- 『설문해자(說文解字)』
- 권복규, 「조선 전기 역병 유행에 관하여」, 『한국사론』43, 2000.
- 신동원, 「조선시대의 역병과 방역」, 『전통과 현대』17, 2001.
- 원보영, 「조선 후기 지역 민간 의료체계의 발전사」, 『국사관논총』107, 2005.
- 이태진, 「소빙기 천변재이 연구와 조선왕조실록 -global history의 한 장-」, 『역사학보』149, 1996.
- 임규호·심태현, 「조선왕조실록의 기상현상 기록 빈도에 근거한 기후」, 『한국기상학회지』38-4, 2002.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