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역(牛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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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소에게 발병하는 바이러스성 질환.

개설

전통시대 우역(牛疫)으로 인한 소의 떼죽음은 곧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수단의 상실을 의미하였다. 이 때문에 우역이 장기화되면 다시 농업의 피해로 이어지게 되므로 사실상 일반적인 역병보다 그 폐해가 더 컸다. 결과적으로 우역은 전국적인 기근 피해의 직간접적 요인이기도 하였다(『영조실록』 26년 11월 30일). 이런 형편인데도 조선시대 내내 우역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은 없었다. 대부분의 역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짐승의 병에도 무력함을 드러냈을 뿐이다(『영조실록』 14년 2월 7일).

내용 및 특징

우질(牛疾)이라고도 하는 우역은 『조선왕조실록』에는 순종대인 1910년까지 200건 가까이 기사가 발견되는데, 중종대 이전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중종대인 1541년(중종 36) 우역이 크게 유행하여 양과 돼지에게도 전염되자 그 해 11월 여러 가축의 치료법을 향촌궁항(鄕村窮巷)의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이두문과 한글로 적고 약명은 향명(鄕名)으로 하여 『우마양저염역치료방』을 엮었다. 이것을 교서관에서 19부를 인출한 뒤, 10부는 서울의 여러 관아에 두고 나머지 9부를 개성부 및 8도에 나누어 하송(下送)하였다. 이에 따라 각 도에서는 여러 부를 각판(刻版)하여 우역이 유행하는 곳에 보내고 치료 효과를 검토하게 하였다. 『우마양저염역치료방』은 중종대 초간된 이후 우역이 유행할 때마다 간행, 반포되었다.

『우마양저염역치료방』은 간단한 치료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 중 몇 가지 사례는 다음과 같다.

○ 소와 말의 전염병을 고치려거든 콩을 묽게 삶아 입에 부어라.

○ 좋은 작설차 2량을 갈아서 물에 풀어 5되를 입에 부어라.

○ 돼지가 병에 걸리면 꼬리 끝을 베어 피가 나오게 하면 곧 좋아진다.

이외에도 고려후기 의학의 연장으로서 1399년(정종 즉위) 『향약제생집성방』에 붙여 강원도에서 간행된 『우의방』도 조선시대 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교재로 활용되었다.

변천

우역은 주로 1월과 2월에 집중되어 있고, 12월에 대대적으로 확산되었다. 대규모로 우역이 발생했던 시기는 민간에서 전국적으로 역병이 창궐했던 1664년(현종 5)부터 1671년(현종 12)까지, 그리고 1683년(숙종 9)부터는 거의 매해 전국에서 발병했는데, 짧게는 2개월, 길게는 장장 8개월에 걸쳐 그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이후 영조대와 고종대에도 우역의 피해가 극심했다. 현종대와 고종대에 발생한 우역은 전국적인 규모의 피해를 가져왔지만 대체로 함경도와 평안도 등 경기 이북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였다.

의의

소의 크고 작은 질병에 대해서는 대체로 촌락마다 침구를 사용하여 치료하는 이가 있었던 것으로 민속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그러나 우역과 같은 전염성 질병은 그 파급력이 크고 예후 또한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는 물론 수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지속적으로 민간의 농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김두종, 『한국의학사』, 탐구당, 1966.
  • 이성우, 『한국식경대전』, 향문사, 1981.
  • 홍순원, 『조선보건사』, 북한과학백과출판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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