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적(籥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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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각종 제례나 회례(會禮)에서 문무(文舞)를 출 때 사용한 춤 도구.

개설

약적(籥翟)은 약(籥)과 적(翟)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약’은 대나무로 만든, 구멍이 세 개인 취주용((吹奏用) 아악기를 가리킨다. ‘적’은 꿩 깃을 묶어 만든 도구로, 문(文)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조선시대에는 각종 제향과 회례연 등에서 조종(祖宗)의 문덕(文德)을 찬양하는 문무와 무공(武功)을 찬양하는 무무(武舞)를 공연하였는데, 문무를 공연할 때 이 약적을 사용하였다. 약은 왼손에, 적은 오른손에 들고 춤을 추었다.

연원 및 변천

조선시대에 문무를 연행할 때 약적을 사용한 것은 중국 주나라의 예법을 수용한 것이다. 세종 때 황희(黃喜)·맹사성(孟思誠) 등이 태조 및 태종에 대한 문무·무무 가사에 관해 아뢰면서, ‘제왕이 중화(中和)의 표준을 세워 가무(歌舞)를 지어 만세에 전하는 일은 마땅히 주왕가(周王家)로서 법을 삼아야 할 것’이라고 한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세종실록』 14년 9월 1일 7번재기사].

『주례』「춘관」에는, “약사(籥師)는 국자(國子)에게 깃털로 춤추는 법과 약을 연주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을 관장한다. 제사에서는 우(羽)와 약을 두드리며 춤추고, 손님에게 향연을 베풀 때도 이와 같이 한다. 대상(大喪) 때는 그 악기를 받들어서 간직해 진열해 둔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깃털을 뜻하는 ‘우(羽)’는 꿩 깃을 나타내는 ‘적(翟)’과 통하는 말이다. 또 『시경』「패풍」 간혜편에서는, “큰 덕을 갖춘 사람이 공(公)의 뜰에서 만무(萬舞)를 추네. 힘은 호랑이와 같고, 고삐를 잡음은 마치 실을 잡은 듯. 왼손에는 약을 쥐고, 오른손에는 적을 잡았네.”라고 했다. 즉 약적은 큰 문덕을 갖춘 사람이 만무를 출 때 사용하는 도구였다. 조선 성종 때 편찬된 『악학궤범』에 따르면, 약은 소리를 위한 것이고, 적은 형용[容]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형태

약은 누런 대나무로 만드는데, 상단 앞면을 도려내 구멍을 내고 거기에 아랫입술을 대고 불면 소리가 나오도록 만든다. 길이는 1자 4치이며, 세 개의 구멍이 있다. 황종(黃鍾)부터 응종(應鍾)까지의 중성(中聲)을 주관한다. 옛날에는 동쪽 땅에서 나는 대나무로 만들었는데, 춘분(春分)의 음으로서 만물이 모두 약동하여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약은 봄의 약동[躍]하는 기운을 상징한다고 한다.

적은 1자 4치 5푼 길이의 나무 자루 위에 용의 머리를 장식하고, 용의 입에 물려 있는 고리 아래로 꿩 깃으로 만든 장식을 세 개의 층으로 늘어뜨려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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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민속 관련 사항

조선시대의 약적은 종묘 제례, 사직제(社稷祭), 풍운뇌우제(風雲雷雨祭), 선농제(先農祭)·선잠제(先蠶祭)·우사(雩祀), 석전제(釋奠祭) 및 회례연(會禮宴) 등을 거행할 때 예식용 문무에서 사용했다. 약과 적은 본래 아악의 문무에 사용되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아악과 속악의 문무에 모두 약적을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 『주례(周禮)』
  • 『시경(詩經)』
  • 『악학궤범(樂學軌範)』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