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中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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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성품을 잘 보존하고 잘 발휘하는 것.

개설

중화(中和)는 『중용(中庸)』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중(中)라고 하고, 감정이 일어나 모두 절도에 맞는 상태를 화(和)라고 하니, 중은 천하(天下)의 대본(大本)이며, 화(和)는 천하의 공통된 도이다[喜怒哀樂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라고 한 데에서 유래한다. 즉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감정이 일어나지 않아서 편벽되거나 치우치지 않은 마음의 상태를 중(中)이라고 하고, 감정이 일어나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이에 중은 천하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기본이 되고, 화는 천하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 공통된 도리가 된다는 것이다. 『중용』에서는 이어 이러한 중화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에 서고 만물이 제대로 육성된다고 하였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이처럼 중화는 인의예지의 성품을 잘 보존하고 잘 발휘하는 것으로서 그 효과가 지대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내용 및 특징

조선조에서 이러한 중화의 개념은 감정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未發時]의 마음공부나 이미 감정이 일어났을 때[已發時] 절도에 맞게 하는 것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중화의 개념은 전통적인 주자의 학설을 따라서, 미발시 마음공부인 중과 이발시 감정을 절도에 맞게 하는 화로 이해되어 왔다. 또한 중종대에는 중화의 개념을 마음의 체용 관계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예컨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보덕(輔德)정원(鄭源)은 세자에게 표문을 올려 중화의 도는 마음을 간직하여 살피는 일이라고 규정하고, 사람들이 지켜야 할 오륜, 음식이나 동정과 같은 사소한 일에 올바름이 있게 되는 것은 중화가 충만하고 천리가 유행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중화의 중(中)은 성(性)의 덕(德)이며 도(道)의 체(體)요, 화(和)는 정(情)의 정(正)이며 도(道)의 용(用)이므로 중화는 마음의 체용 관계라고 이해하였던 것이다(『중종실록』 37년 11월 12일).

또한 재변이 일어났을 경우 중화의 방도를 찾아야 재변을 물리칠 수 있다고도 여겼다. 즉 재변은 인심이 화합하지 못하여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인심의 화합을 위해서는 원통한 옥사나 정치상의 폐단을 제거하여 중화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중종실록』 33년 6월 23일).

조선후기에도 중화에 대한 이해는 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왕은 함양 공부에 유념하여 중화의 덕을 쌓을 것이 권장되었고(『영조실록』 43년 9월 5일), 재변이 일어나면 중화의 덕에 힘써서 할 것으로 여겼다(『영조실록』 40년 10월 5일). 서학이 유입된 정조대에는 중화의 개념이 마땅히 성내야 할 것에 성내게 하는 이단 배척의 이론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정조실록』 20년 4월 5일).

참고문헌

  • 『중용(中庸)』
  • 한국사상연구회, 『조선유학의 개념들』, 예문서원, 2002.
  • 유교사전편찬위원회 편, 『유교대사전』, 박영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