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적(樂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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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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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악적 |
한글표제 | 악적 |
한자표제 | 樂籍 |
관련어 | 기적(妓籍), 여기(女妓), 연향(宴饗) |
분야 | 문화/예술/음악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이정희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악적(樂籍)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종실록』 3년 11월 18일, 『성종실록』 1년 9월 9일, 『연산군일기』 11년 10월 13일, 『중종실록』 5년 10월 21일 |
국가에 소속된 여기(女妓) 등의 명단을 기록한 문서.
개설
악적(樂籍)은 서울과 지방의 관아에 예속된 기녀의 이름을 기입해놓은 장부이다. 악적은 기녀들을 신분적으로 묶어놓는 사회적 기능을 하였고, 그 인원수를 파악하는 기초 자료로 사용되었다. 궁중과 지방의 각종 행사에 기녀들을 동원할 때 근거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악적에 오르면 평생토록 그 이름이 지워지기 어려웠다. 그러나 왕족의 첩이 되어 악적에서 빠져나오기도 했고(『태종실록』 3년 11월 18일), 행실이 나쁠 경우 불명예스럽게 악적에서 제명되기도 하였다(『성종실록』 1년 9월 9일). 드물지만 궁중 연향에서 뛰어난 재예를 펼쳐 왕이나 대비를 크게 감동시킬 경우 특별히 면천되어 영예롭게 악적에서 나올 수도 있었다. 연산군대에는 지방의 기녀를 서울로 불러들인 수가 많아 서울의 악적에 오른 이가 1천 명이 된 적도 있었다(『연산군일기』 11년 10월 13일). 중종대에는 악적에 기록된 이들이 지나치게 많아 감원 조치가 뒤따랐다(『중종실록』 5년 10월 21일).
변천
조선시대에 궁중과 지방관아의 연향에서 여기들이 음악·노래·춤을 제공하는 한 축을 형성했으므로, 이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움직이는 과정에서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악적은 조선시대 내내 지속적으로 존재하였다.
참고문헌
- 『관노기비안(官奴妓婢案)』
-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 『순조무자진작의궤(純祖戊子進爵儀軌)』
-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
- 『헌종무신진찬의궤(憲宗戊申進饌儀軌)』
- 『고종정축진연의궤(高宗丁丑進宴儀軌)』
- 『고종정해진찬의궤(高宗丁亥進饌儀軌)』
- 『고종임진진찬의궤(高宗壬辰進饌儀軌)』
- 『고종신축진찬의궤(高宗辛丑進饌儀軌)』
- 『고종신축진연의궤(高宗辛丑進宴儀軌)』
- 『고종임인진연의궤(高宗壬寅進宴儀軌)』
-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궁중의 잔치, 연향』, 글항아리, 2013.
- 김종수, 『조선시대 궁중연향과 여악연구』, 민속원, 2001.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1~3, 민속원, 2005.
- 조경아, 「조선후기 의궤를 통해 본 정재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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