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박(牙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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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동동(動動) 정재와 조선시대의 아박무(牙拍舞)를 연행할 때 사용한 타악기.

개설

박(拍)은 음악과 춤의 진행을 알리고 지시할 때 사용하는 국악기를 말한다. 아박은 고려시대의 동동 정재에 쓰였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동동이 아박무로 명칭이 바뀐 뒤에도 여전히 사용되었다. 아박은 한 쌍으로 구성되었으며, 2명의 무용수가 하나씩 들고 춤을 추었다. 여섯 조각의 아박을 펼쳤다가 접으면 ‘짝’ 하는 소리가 나는데, 이를 춤의 마디로 삼았다.

연원 및 변천

『고려사(高麗史)』「악지(樂志)」에 따르면, 아박은 동동 정재에 사용되었다. 두 무용수가 각기 허리띠에 꽂아두었던 아박을 빼어 들고, 음악의 절차에 따라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혹은 무릎에 혹은 팔에 아박을 치며 춤을 추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동동이 아박무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아박은 계속 사용되었다. 성종 때 편찬된 『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아박을 놓는 방법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춤이 시작되기 전에 악사가 한 쌍의 아박을 무대 중앙에 놓는데, 왼쪽에 먼저 놓았으며, 이때 아박의 끈이 안쪽을 향하도록 하였다.

아박무는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공연되었으며, 그에 따라 아박 역시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아박무는 왕실을 위한 진연(進宴) 외에 회례연(會禮宴)에서도 공연되었으며(『세종실록』 14년 3월 16일), 양로연에서 연행되기도 하였다(『세종실록』 15년 8월 8일). 또한 아박무는 진주 교방(敎坊)을 비롯한 지방관아에서도 공연되었는데, 이때도 아박이 사용되었다. 한편, 아박을 치며 춤추는 아박무는 기녀뿐 아니라 가동(歌童)과 무동(舞童)도 쉽게 익혀 공연하는 종목이었다고 한다(『중종실록』 5년 12월 21일).

형태

아박의 형태는 『악학궤범』에 자세히 전한다. 아박은 대개 상아로 만들었는데, 고래 뼈·소뼈·사슴뿔 등으로 대신하기도 하였다. 얇고 길게 다듬은 여섯 조각의 상아를 사슴 가죽으로 꿴 뒤, 오색 매듭을 드리웠다. 아박의 길이는 6치 8푼이었으며, 비교적 넓은 아랫부분의 너비는 8푼, 두께는 2푼이었고, 윗부분의 너비는 6푼, 두께는 1푼 반이었다. 한편 일반적인 박의 길이는 아박의 두 배가 넘는 1자 3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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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민속 관련 사항

1848년(헌종 14)의 『헌종무신진찬의궤(憲宗戊申進饌儀軌)』에 따르면, 아박 1쌍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7냥 5전 7푼이었으며, 다회장(多繪匠) 2명이 식비로 3전 6푼씩을 받고 하루 만에 만들었다고 한다. 그에 비해 1902년(광무 6)의 『고종임인진연의궤(高宗壬寅進宴儀軌)』에는 아박 1쌍을 만드는 비용이 80냥으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악학궤범(樂學軌範)』
  • 『헌종무신진찬의궤(憲宗戊申進饌儀軌)』
  • 『교방가요(敎坊歌謠)』
  • 『고종임인진연의궤(高宗壬寅進宴儀軌)』
  • 국립국악원,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 손선숙, 『궁중정재 용어사전』, 민속원, 2005.
  • 송방송·조경아 외, 『국역 순조기축진찬의궤:권3·부편』, 민속원, 2007.
  • 성현 저, 렴정권 역, 『악학궤범』, 평앙국립출판사, 1956.
  • 한국예술학과 음악사료강독회 역주, 『국역 헌종무신진찬의궤』 3,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2006.
  • 배인교, 「조선후기 지방 관속 음악인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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