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일기(瀋陽日記)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1637년(인조 15)부터 1644년까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鳳林大君) 등의 일행이 청나라 심양(瀋陽)에 볼모로 가서 생활하던 상황을 기록한 일기.

개설

『심양일기(瀋陽日記)』는 1637년 병자호란 종식 후 심양에 볼모로 갔던 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와 차자인 봉림대군 등의 일행이 약 8년간 생활한 내용을 기록한 일기이다.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서 편찬한 것으로,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장서각에 10책본과 8책본의 일기가 전한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와의 관계와 볼모로 갔던 소현세자 등의 생활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편찬/발간 경위

1637년 인조의 항복을 받은 청나라는 강화(講和)의 조건으로 모두 11개 조항을 제시했는데, 이 중 한 가지가 조선 왕의 장자와 차자를 비롯해 대신(大臣)의 자제를 심양에 인질로 보내라는 요구였다. 청나라와 전쟁이 종식된 후 이 요구에 따라 같은 해 2월 8일에 청나라 구왕(九王)이 조선에서 철수할 때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姜氏), 봉림대군과 그 부인 등을 데리고 귀국했다(『인조실록』 15년 2월 8일). 이후 소현세자 등은 약 8년간을 심양관(瀋陽館)에서 생활하였다. 이때 세자의 수행과 호위를 위해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관원이 동행하였는데, 『심양일기』는 이때 수행했던 세자시강원에서 작성한 것이다.

서지 사항

『심양일기』는 필사본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데, 10책본과 8책본이 전한다. 10책본의 표제는 ‘심양일기초(瀋陽日記草)’이고, 8책본의 표제는 ‘소현심양일기(昭顯瀋陽日記)’이다. 내용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8책본에 비해서 10책본에는 효주(爻周)되거나 수정된 부분이 있다. 10책본을 바탕으로 8책본을 정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와는 달리 1631년 박난영(朴蘭英)이 춘신사(春信使)로 심양에 다녀온 기록을 정리한 1책본의 『심양일기』도 있다. 일기라는 서명에 따라 형식은 일자 순서로 기록하고 있으나, 내용은 장계(狀啓) 형식이다.

구성/내용

『심양일기』는 일자별로 기술되었는데, 기록 주체가 세자시강원이기에 주로 세자를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먼저 해당 일자와 그날의 기후를 기록한 뒤에 세자의 일상 동정, 시강원 관원들의 문안 기사 등을 적고 청나라의 동향 등도 아울러 기록하였다.

8책본의 각 책별 기록 대상 시기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책은 1637년 1월 30일부터 12월 30일까지를 기록하였다. 인조가 항복한 내용과 이후 강화 조건에 따라 소현세자 등이 심양에 도착하는 과정이 기술되었고, 인조의 비인 인열왕후(仁烈王后)의 국상 때 세자의 귀국 요청 사실 등을 기록하였다.

2책은 1638년 1월 1일부터 12월 30일까지로, 이른바 ‘삼전도비(三田渡碑)’의 비문을 수정하는 문제와 향화인(向化人)의 쇄환 문제, 청나라의 군사 징병령에 대한 논란과 봉림대군이 청나라 황제의 서행(西行)에 동행한 사실 등이 기록되었다.

3책은 1639년 1월 1일부터 3월 7일까지를 대상으로 하였고, 「관소일기(館所日記)」가 첨부되어 있다. 첨부된 「관소일기」는 1640년 2월 14일부터 5월 3일까지를 기록하였다.

4책은 1640년 윤1월 11일부터 3월 2일까지, 그리고 며칠의 공백 뒤에 같은 해 3월 6일부터 12월 30일까지를 기록하였다.

5책은 1641년 1월 1일부터 12월 29일까지를 기록하였는데, 「서행시치행사건(西行時治行事件)」과 「서행시시강원일기(西行時侍講院日記)」, 「엽행일기(獵行日記)」 등의 이름으로 기술된 부분이 있다.

6책은 1642년 1월 1일부터 12월 28일까지를 기록하였는데, 「엽행시관중일기(獵行時館中日記)」, 「엽행일기」, 「봉황성일기(鳳凰省日記)」 등이 첨부되었다.

7책은 1643년 1월 1일부터 1644년 1월 19일까지가 기록되었고, 「엽행일기」가 첨부되었다.

8책은 1844년 1월 20일부터 8월 18일까지를 기록하였는데, 「북행일기(北行日記)」가 첨부되어 있다.

8책본에는 또 각각의 행사와 관련해서 수행한 명단이 수록되었다. 1책 마지막 부분에 「남한산성배종질(南漢山城陪從秩)」과 「심양입래배종(瀋陽入來陪從)」이, 5책 마지막 부분에 「서행시일행원역(西行時一行員役)」과 「엽행시배종원역(獵行時陪從員役)」이, 6책의 「엽행일기」에 배종(陪從) 원역(員役)이 기록되었고, 7책의 「엽행일기」에도 배종 원역의 명단이 수록되었다.

후대 왕들은 대명의리(對明義理)를 고취하는 일환으로 『심양일기』를 이용하기도 하였는데, 영조의 경우 소현세자가 심양에 있을 때 배종했던 신하들의 후손을 임용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영조실록』 32년 1월 29일).

참고문헌

  • 김종수 외, 『국역 소현심양일기』, 민속원, 2008.
  • 김남윤, 「『심양일기』와 소현세자의 볼모살이」, 『규장각』 29, 2006.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