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호군(陞戶軍)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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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승호군 |
한글표제 | 승호군 |
한자표제 | 陞戶軍 |
관련어 | 훈련도감(訓鍊都監), 승호제(陞戶制) |
분야 | 정치/군사·국방/편제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선조~고종 |
집필자 | 윤훈표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승호군(陞戶軍)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영조실록』 17년 8월 11일 |
조선후기 훈련도감의 승호제(陞戶制)에 의해 충원된 군인.
내용
훈련도감(訓鍊都監) 이 설립된 직후에는 역이 없는 한정(閑丁)들을 모집해서 궐원을 보충하였다. 그러나 점차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한양에 있는 각사(各司) 전복(典僕) 등으로 채우는 일이 늘었다. 이로 인해 군사의 질이 저하되자 이것을 막기 위해 1606년(선조 39)부터 승호제를 채택하여 실시하였다. 이는 각 지방에 군액을 할당하여 이들을 서울로 올라오게 하여 도감군으로 충원하는 방식이다. 초창기에는 강제 배정 등에 따른 반발과 부작용이 적지 않았으나 강력하게 밀고 나가 마침내 제도화되어 정기적으로 행해졌다. 식년(式年)마다 실시했는데 당해에 서울과 각 지방에서는 자기 지역에 할당된 승호군을 역이 없는 한정이나 속오군(束伍軍), 또는 포보(砲保) 가운데 건장한 자를 뽑아 이듬해 9월까지 상경시켜야 했다. 아울러 승호군 1명당 3명씩의 포보도 갖추어 명단을 올려 보냈다. 이때 각 지역에 할당된 군액은 훈련도감의 형편과 시기에 따라 변동되었으나 17세기에는 대략 230명 선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이들만으로는 부족하여 식년 승호와 별도로 부정기적으로 각 지방에 산재한 포보를 승호하여 도감군으로 충원하였다. 이를 별승호(別陞戶)라고 한다. 한편 승호군의 이탈을 방지하고자 비록 죄를 범하더라도 군안(軍案)에서 삭제하지 아니하고 정배(定配)하지 않으며 엄중하게 곤장(棍杖)을 가하게 했다.
용례
訓鍊都正具聖任曰 訓營陞戶軍犯定配之律者 如生松偸斫 城內放砲故犯作奸之罪 請自今勿爲定配 自軍門棍治(『영조실록』 17년 8월 11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대전회통(大典會通)』
- 『만기요람(萬機要覽)』
- 金鍾洙, 『朝鮮後期 中央軍制硏究』, 혜안,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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