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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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승마갈근탕 |
한글표제 | 승마갈근탕 |
한자표제 | 升麻葛根湯 |
상위어 | 의학(醫學) |
하위어 | 감초(甘草), 갈근(葛根), 백작약(白芍藥), 승마(升麻) |
관련어 | 삼소음(參蘇飮) |
분야 | 문화/의학·약학/처방 |
유형 | 약 |
집필자 | 김호 |
약재 | 승마(升麻), 백작약(白芍藥), 감초(甘草), 갈근(葛根) |
약효 | 상한과 온역, 두창과 마진으로 인한 두통 및 발열 증세를 치료함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1년 5월 1일, 『정조실록』 10년 5월 28일, 『순조실록』 1년 11월 20일 |
상한과 온역, 두창과 마진 등으로 두통이 심하고 열이 나는 증세를 치료하는 처방.
개설
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은 상한(傷寒)이나 온역(溫疫) 및 풍열(風熱)로 열이 심하고 두통이 있는 증세를 치료한다. 또한 소아의 허실에 상관없이 두창이 이미 발생하였거나 아직 발생하지 않았을 때에도 모두 치료할 수 있는 상용 약물로 활용되었다.
『의방유취』「소아문」에서는 두창(痘瘡)을 치료하는 약물로 승마갈근탕을 소개하였다. 두창을 치료할 때는 발진이 돋을 때를 기준으로 그 전후의 치료법에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승마갈근탕은 발진이 돋았을 때나 아직 돋지 않았을 때나 관계없이 복용이 가능할 뿐 아니라 소아의 허실에도 관계없이 처방할 수 있다고 했다. 『간이벽온방』에는 승마갈근탕은 상한과 시역(時疫)으로 두통이 나고 오한과 열이 심하게 나는 증세를 치료한다고 했으며, 『벽온신방』에는 상한과 온역으로 초기에 머리가 아프고 한열이 오가며 사기가 표피에 있는 경우 땀을 내는 약물로 처방했다. 『언해두창집요』에는 두창의 독을 풀어주는 약물로 소개하고, 두창의 발진이 못대가리 모양으로 솟아오르고 얼굴에 더욱 많이 열꽃이 필 경우 땀을 내 열을 내려주기 위해 승마갈근탕을 처방하였다. 『의림촬요』에도 두창이 초기에 발진하여 전신이 열이 나는 증세에 승마갈근탕을 처방하였다. 또한 상한으로 인해 한열이 오가고 코가 마르고 전신에 통증이 있는 증상을 치료한다고 소개했다.
『광제비급』에는 반진(癍疹)의 초기 증세에 처방했다. 『급유방』에서는 소아단독(小兒丹毒)을 치료하는 약물로 소개했다. 또한 소아 부종으로 설사와 학질 등의 증세가 장기화되는 것을 치료한다. 『산림경제』에는 두진이 너무 많이 나와 독이 성할 때는 급히 연교승마탕(連翹升麻湯)이나 승마갈근탕을 복용한다고 했다. 『의방활투』는 『동의보감』을 인용하여 온병이나 시령(時令), 감모(感冒) 증세를 치료한다고 했다.
제조법
승마(升麻)·백작약(白芍藥)·감초(甘草) 각 1냥, 갈근(葛根) 1.5냥을 달여 찌꺼기를 버리고 하루에 2~3차례 복용한다.
효능
상한(傷寒)이나 온역(溫疫)으로 인한 발열 및 두통을 치료한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세종대에 각 도에 역질이 유행하자 향소산(香蘇散)·십신탕(十神湯)·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 등의 약물을 전국에 보내어 환자를 구료하게 했다(『세종실록』 1년 5월 1일). 조선후기 정조대에 전국적으로 홍역이 유행하여 지방의 명의들에게 치료법을 올리라고 하였는데, 영남 칠곡(漆谷)의 의원 박상돈(朴尙敦)이 올린 홍역 치료법은 승마갈근탕을 위주로 한 처방이었다. 그는 승마갈근탕이 크게 땀을 내주는 약제는 아니지만 피부 조직의 기능을 개선시키는[解表] 효능이 있으므로 피부를 소통시켜 진독(疹毒)이 쉽게 나오고 걷히게 만들어 준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사시(四時)를 막론하고 홍역을 치료하는 성약(聖藥)이며 통치(通治)의 처방에 반드시 위주로 하는 약물이라고 주장했다(『정조실록』 10년 5월 28일). 한편 순조가 홍역을 앓아 발진이 점차 붉게 변하고 다리와 등에도 발진이 나타나자, 의관들이 논의하여 승마갈근탕을 처방하였다(『순조실록』 1년 11월 20일).
참고문헌
- 『의방유취(醫方類聚)』
-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
- 『벽온신방(辟瘟神方)』
- 『의림촬요(醫林撮要)』
-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
- 『급유방(及幼方)』
- 『산림경제(山林經濟)』
- 『의방활투(醫方活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