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창궁(壽昌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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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의 별궁(別宮)이자 조선 태조와 태종의 즉위 장소.

개설

고려초기에 건립된 왕실의 별궁이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이곳에서 즉위했다[『태조실록』 1년 7월 17일]. 조선초 개경으로 환도했을 때에는 정종이 머물며 정사를 보던 곳으로, 태종의 즉위 장소가 되기도 했다. 태종 즉위년인 1400년 12월 22일 화재로 소실되었다[『정종실록」 2년 12월 22일 2번째기사].

위치 및 용도

수창궁의 위치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재도성중앙(在都城中央)’이라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도성은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을 일컫는 것으로, 개성의 십자로(十字路) 주변에 수창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창궁은 고려왕조의 별궁으로 건립되었으나, 조선 건국 당시 태조 이성계의 즉위 장소로 사용되면서 조선의 별궁이 되었다. 그 외에 명나라의 황실 가족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인 성절례(聖節禮)나 사신을 접대를 행하는 곳으로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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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및 현황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을 보았을 때 수창궁은 고려전기부터 존재했다. 주로 왕의 이궁(離宮)으로 활용되었다. 궁 안에 관인전(寬仁殿)·화평전(和平殿)·만수정(萬壽亭) 등이 있었으나 몽골과의 전쟁으로 훼손되었다. 이후에는 충선왕과 혼인한 보탑실령(寶塔實怜)의 궁려(穹廬)가 1297년(고려 충렬왕 23)에 건립되기도 했다.

이곳에 다시 왕실 별궁 건립 계획을 세운 것은 1370년(고려 공민왕 20)의 일이다. 이후 공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으나 1384년(고려 우왕 10)에 완성되었다. 1388년(고려 창왕 즉위) 왕의 이름에 ‘창’ 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것을 피하여 수녕궁(壽寧宮)이라 불렀고 공양왕이 이곳에서 즉위했다.

조선 건국 당시 태조 이성계도 여기서 즉위했다. 그리고는 왕실의 별궁으로 삼아 1394년(태조 3)에는 서침실을 헐고 2층의 전(殿)을 세우기도 했다(『태조실록』 3년 1월 2일). 1396년(태조 5) 한양 천도 후 수창궁은 이전보다 활용도가 떨어졌지만, 1399년(정종 1) 개경 환도 시에는 정무를 보거나 왕실의 연회를 베푸는 곳으로 활용되었다. 후원에 있는 청심정(淸心亭)에서 척석(擲石) 놀이를 구경했다는 기록도 있다.

1400년(정종 2) 11월 13일 정종을 이어 왕위에 오른 태종의 즉위식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은 12월 22일 사약(司鑰)이 실수로 불을 냈는데, 침실에서 시작된 불이 대전(大殿)에까지 미쳐 건물 모두가 소실되었다. 궁내의 사고(史庫)에 있던 사책(史冊)은 다행히도 입직하던 사관(史官)노이(盧異)가 구했다.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