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원(上林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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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궁궐 내 정원을 관리하고 과일·화초 등에 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

개설

상림원은 상림원(上林苑)으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조선 초인 1394년(태조 3) 동산색(東山色)을 개칭한 것으로, 궁궐 내의 정원 관리 등을 주로 담당하였다. 또한 진기한 동물들이 진상되면 이의 사육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1466년(세조 12) 장원서(掌苑署)로 개칭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394년 7월 11일 종전의 동산색을 상림원으로 개칭하면서 설치되었다. 동산색이 관장하던 궁궐 내의 정원 관리와 지방에서 진상되는 과채(果菜)·화초(花草)에 관한 일을 계속해서 관장하였다.

조직 및 역할

소속 관원의 직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제조(提調) 2명(『세종실록』 5년 3월 24일)을 비롯해 제거(提擧)와(『세종실록』 11년 10월 11일) 사(史)(『태조실록』 7년 9월 1일), 별좌(別坐)(『태종실록』 6년 2월 6일), 별감(別監)(『태종실록』 13년 10월 20일) 등이 소속되었다. 이 중 제거·별좌는 무록직(無祿職)이고, 별좌는 구임직(久任職)이다(『세조실록』 6년 8월 16일). 이 밖에도 관사(管事)·부관사(副管事)·전사(典事)·부전사(副典事)·급사(給事)·부급사(副給事) 등의 직제가 설치되기도 하였다(『세조실록』 3년 7월 12일).

상림원은 1405년(태종 5) 육조(六曹)의 속사와 속아문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선공감(繕工監)·사재감(司宰監) 등과 함께 공조(工曹)의 속아문으로 편성되었다(『태종실록』 5년 3월 1일).

상림원은 경복궁 정원 안의 화초뿐 아니라 노루와 사슴 등 관상용의 동물 사육을 주로 담당하였다(『세종실록』 5년 3월 3일). 이의 연장선상에서, 관리하는 나무의 접목을 위해 지방에서 좋은 묘목을 구하기도 하였다(『태종실록』 12년 2월 18일). 또한 특이한 동물들이 진상되면 이의 사육을 담당하였는데, 평안도에서 바친 검은 여우를 비롯해(『세종실록』 10년 3월 10일) 제주도에서 바친 원숭이와 노루(『세종실록』 18년 윤6월 16일), 그리고 대마도의 종정무(宗貞茂)가 사신을 통해서 바친 공작(『태종실록』 6년 9월 26일)의 사육을 담당하였다.

이 밖에도 각 지방에서 중앙으로 진상되는 과일의 수납을 전담하기도 하였는데(『세종실록』 8년 2월 4일), 간혹 상림원에서 기른 과일이 많은 경우 진상하는 과일의 양을 줄이기도 하였다(『세종실록』 10년 9월 19일). 상림원에서 기르던 화초와 비둘기를 민간에 분양하기도 하였다(『세종실록』 8년 4월 22일). 상림원에서 과일을 출납할 때는 감찰(監察)이 파견되어 감독하였다(『세조실록』 11년 6월 29일).

변천

상림원은 1466년(세조 12) 1월 15일 장원서로 개칭되어 이후 『경국대전』에 규정되었다. 장원서에는 종1~종2품관이 겸하는 제조 1직과 6품직인 별제(別提) 3직과 정6품직인 장원(掌苑) 1직이 있었고, 『속대전』에 제조와 장원이 혁거되면서 별제가 2직으로 감소되고 종6품직이 됨에 따라 정6품 아문에서 종6품 아문으로 조정되어 규정된 후 조선말까지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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