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服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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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식 상례(喪禮)를 치를 때 입는 상복(喪服) 제도로 망자(亡者)와의 혈연적 친속 관계나 명분론적 의리 관계에 따라 등급을 달리하여 상복의 형태와 복상(服喪) 기간을 규정한 예법(禮法).

개설

복제(服制)에는 크게 참최(斬衰)·자최(齊衰)·대공(大功)·소공(小功)·시마(緦麻)의 다섯 종류가 있으므로 오복제(五服制)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복을 기초로 한 유교식 상복 제도는 중국 한(漢)나라 때에 완성된 『의례(儀禮)』「상복」 편에 수록되어 있다. 이것을 남송(南宋)의 주희(朱熹)가 사대부 계층의 가정의례에 맞게 간략히 정리한 것이 『가례(家禮)』「상례」편 성복(成服) 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유교식 상복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고, 고려 말에 성리학의 도입과 함께 들어온 『가례』가 신흥 사대부 사회에 수용되면서 오복 제도가 널리 보급되고 예속(禮俗)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내용 및 특징

유교식 복제의 특징은 친소 관계에 따라 등급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참최, 자최, 대공, 소공, 시마의 오복이다. 이는 가장 가까운 친족인 부모부터 먼 친족인 3종(8촌) 형제까지, 그리고 부부·옹서(翁壻)·군신(君臣)·주노(主奴) 등 특별한 의리 명분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구분하여 등급에 따라 다른 상복을 입게 한 예법이다.

상복에는 5종류가 있지만, 여기에도 혈연관계에 의하여 본래 해당하는 복인 정복(正服), 의리 명분 관계에 의해 정해진 복인 의복(義服), 본래 입어야 할 상복보다 등급을 올려서 입도록 한 복인 가복(加服), 본래 입어야 할 상복보다 등급을 내려서 입도록 한 복인 강복(降服)의 구분이 있었다. 같은 자최 부장기복(不杖期服)이라도 손자녀가 조부모를 위하여 입거나 형제 사이에 입는 경우는 정복에 해당하고, 조카와 백숙모 사이에 입는 복은 의복에 해당하며, 조부나 증조부가 승중(承重)한 적장손을 위해서 입는 경우는 가복에 해당하고, 첩이 자신의 부모를 위하여 입는 경우는 강복에 해당한다.

복제의 등급을 나누는 원리는 흔히 친친(親親), 존존(尊尊), 명의(名義), 출입(出入), 장유(長幼), 종복(從服) 등에 따라 결정된다. 친친은 친속 관계의 친소·원근에 따라 복의 경중을 구분한 것이다. 친족의 경우에는 직계로 부모·조부모·증조부모·고조부모의 4대에 미치고, 아래로는 자녀·손자녀·증손자녀·현손자녀에 이른다. 방계로는 백숙부모·종백숙부모·재종숙부모까지, 조부의 형제인 종조부모·재종조부모, 증조부의 형제인 종증조부모까지 미치며, 비속과 동렬(同列) 친족에게도 같은 원리로 촌수의 원근에 따라 복의 고하가 결정된다. 상하 4대와 옆으로 8촌을 넘어 친속 관계가 다하면 복도 끝나게 된다. 이렇게 상복을 입을 촌수를 벗어난 친척을 무복친(無服親)이라고 한다. 그러나 9~10촌의 친족에게는 준상복이라고 할 수 있는 단문복(袒免服)을 입고, 이들을 단문친이라고 한다.

존존은 신분과 지위의 존비에 따라 상복의 경중을 규정하는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참최를 입고 어머니에게는 자최를 입거나, 신하가 국왕을 위해 참최를 입으며, 국왕은 방계 친족들에게 복을 입지 않으며, 또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어머니의 상에는 기년복[杖朞]을 입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명의는 순전히 명분 때문에 상복을 입는 원리이다. 입양모(入養母)나 숙모는 혈친 관계가 아니지만 입양부(入養父)나 숙부와 혼인했기 때문에 어머니라는 명분이 생겨 상복을 입는 것이다. 출입은 여자가 출가하거나 출가했다가 친정으로 되돌아온 경우, 혹은 남의 후사로 들어가거나, 후에 파계(罷繼)하고 귀종(歸宗)한 경우 등에 해당한다.

장유는 주로 미성년자의 상[殤喪]에 적용되는 원리이다. 11세 이하의 상에는 복이 없지만, 12~19세 사이 미성년자의 상에는 나이에 따라 상복을 정하였는데, 이를 상복(殤服)이라고 하고 장상(長殤)·중상(中殤)·하상(下殤)으로 구분한다. 장상은 16~19세, 중상은 12~15세, 하상은 8~11세에 죽은 경우를 말한다. 미성년자에 대한 상복은 정식 복제에서 장·중·하상의 차례로 각기 한 단계씩 내려서 입는다. 예법에 규정된 복제는 이와 같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대공 이하의 상에 상복을 입지 않고 두건만 쓰는 일이 많았다.

참최·자최·대공·소공·시마의 다섯 등급으로 구분되는 상복은 상의하상(上衣下裳)의 기본 형태는 같지만, 세부 형태와 만드는 옷감, 부수 장구(裝具) 및 그 착용 기간이 등급에 따라 다르다.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참최는 상복 중에서 가장 중대한 것으로, 자녀가 아버지를 위하여, 아내가 남편을 위하여, 신하가 국왕을 위하여, 아버지가 장자를 위하여, 첩이 처를 위하여, 종이 주인을 위하여 입는 복이다. 옷감은 최대한 거친 익히지 않은 삼베인 생포(生布)를 쓰며 상의와 하상으로 구성되는데, 전 3폭 후 4폭으로 된 하상의 하단을 깁지 않고 너풀거리게 둔 것이다. 상의에는 최(衰)·부판(負版)·벽령(辟領) 등을 부착한다. 관(冠)· 머리띠인 수질(首絰)·허리띠인 교대(絞帶) 등에는 씨가 달린 삼으로 꼰 끈을 사용하며, 지팡이[杖]는 마디가 있는 대[苴杖]를 쓰고 신은 삼 껍질로 만든 짚신의 일종인 관구(管屨)를 쓴다. 참최의 복상 기간은 3년(만 2년 27개월)이다.

다음으로 자최는 복상 기간에 따라 다시 삼년복(三年服)·지팡이를 짚고 1년 복상하는 장기복(杖期服)·지팡이 없이 1년 복상하는 부장기복(不杖朞服)·지팡이 없이 5개월 복상하는 오월복(五月服)·지팡이 없이 3개월 복상하는 삼월복(三月服)으로 세분화된다. 자최 삼년복은 참최 다음 가는 복으로, 기본 형태는 참최와 같지만 옷감은 한 등급 낮은 거친 생포를 쓰고 하상의 하단을 앞 3폭 뒤 4폭으로 하되 연결해 기운 것이다(이하의 기본 형태는 모두 같다). 관·수질·교대 등을 삼베로 제작하며, 지팡이는 오동나무를 마디가 없게 깎아 만든 삭장(削杖)을 사용하고, 신은 삼베로 만든 짚신의 일종인 소구(疏屨)를 사용한다.

장기복은 다음 등급의 생포를, 부장기복 이하는 그다음 등급의 생포를 쓴다. 자최의 복상 기간은 3년(만 2년 27개월), 장기(만 1년 15개월), 부장기(만 1년 15개월), 5개월, 3개월의 다섯 종류가 있다. 자최 삼년복은 자녀가 어머니를 위하여, 어머니가 장자를 위하여, 자부가 시어머니를 위하여 입는다. 장기복은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아들이 어머니를 위하여,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입는다.

부장기복은 부모가 장자 외의 아들을 위하여, 조부모가 손자녀를 위하여, 형제·자매를 위하여, 조카가 백숙부모를 위하여, 백숙부모가 조카를 위하여 입는다. 자최 오월복은 증손자녀가 증조부모를 위하여 입는다. 자최 삼월복은 현손자녀가 고조부모를 위하여 입는다.

대공은 자최와 같은 형태이지만, 조금 거친 숙포(熟布)를 쓴다. 숙포는 삼베를 익힌 것이다. 대공복에는 최·부판·벽령 등은 쓰지 않는다. 대공·소공·시마복은 옷감의 종류와 수질·요질 등의 크기로 구분된다. 대공의 수질 폭은 5치, 요질 폭은 4치이다. 복상의 기간은 9개월이다. 종형제·자매가 상호 간에, 조부모가 손자녀를 위하여,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위하여, 백·숙모가 질부를 위하여, 며느리가 남편의 조부모·백숙부모·조카 및 본생부모를 위하여 입는다.

소공은, 복제는 대공과 같고 조금 더 고운 숙포를 쓰며, 수질은 4치, 요질은 3치이다. 복상 기간은 5개월이다. 복상 친족은 대단히 많지만, 대표적인 경우는 종손자녀와 종조부모가 상호간에, 종질·종질녀와 종백숙부·종고모가 상호간에, 외손자녀와 외조부모가 상호간에 입는 경우 등이다. 시마는, 복제는 소공과 같고 가장 고운 숙포를 사용하며, 수질은 3치, 요질은 2치이다. 복상 기간은 3개월이다. 복상 친족은 대단히 많지만, 대표적인 경우는 재종형제 상호간에, 내외종 형제 상호간에, 처부모와 사위 상호간에 입는 경우 등이다.

변천

유교의 오복제는 고대 중국 주(周)나라의 상례 예속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최초로 오복을 명기한 유교 경전은 주공(周公)이 제정하고 공자가 정리한 것으로 알려진 『의례』「상복」편이다. 여기에는 상복에 관한 규정이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이는 대개 한대(漢代)의 학자들이 정비한 것이며 당초부터 이렇게 완비되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의 복제는 부모상에 대한 삼년복 위주로 되어 있었을 것이나 전국시대와 진한(秦漢) 시대를 지나면서 오복제가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는 유교를 국교로 삼았으므로 유교 의례를 천하 공공의 예법으로 보급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역대 왕조에 이어졌고 당대(唐代)에 편찬된 국가 의례서인 『개원례(開元禮)』로 완비되었다. 송대에는 사대부들을 위한 예법이 강구되었는데, 주희가 편찬한 『가례』에도 『의례』의 오복제가 그대로 인용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우리나라에 유교식 상복 제도가 도입된 것은 삼국시대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502년(신라 지증왕 3) 4월에 상복 제도가 반포되었다. 부모에 대한 삼년상 중심이었던 이때의 복제는 통일신라와 고려초기까지 이어져 시행된 것이 여러 문헌에 나타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주서(周書)』「이역전(異域傳)」 및 『신당서(新唐書)』「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백제와 고구려에도 일정한 상복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복 제도를 정식으로 반포하여 의례화한 것은 985년(고려 성종 4)인데, 이때의 오복 제도는 중국의 정비된 유교식 복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한 것으로 조선시대의 복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 왕조는 유교를 이념으로 건국된 국가였으므로 고려 말에 도입된 『가례』의 보급에 힘썼고, 국가적인 의례 정비에 노력하였다. 특히 태종~세종대에는 의례상정소(儀禮詳定所) 등을 설립하여 고례의 연구와 예제 정비를 서둘렀다. 그 결과가 『세종실록』「오례(五禮)」와 성종 때 반포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였다.

여기에는 복제가 자세히 수록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수록되었다. 이렇게 하여 오복제는 국가의 최고 규범으로 확립되었다. 17세기에 예학이 발달하면서 상복 제도는 더욱 치밀하게 연구되고 사회 저변에까지 널리 보급되었다. 이러한 유교식 복제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의의

복제의 오복은 상례 때 착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례의 일부로 시행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친족 관계의 친소와 경중을 정하는 표준이 되어 친족 간에 행해지는 각종 행위의 효력과 범죄의 경중을 설정하는 준칙이 되어 연좌법(連坐法) 등에 적용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가례(家禮)』
  • 『가례집람(家禮輯覽)』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예기(禮記)』(鄭註·孔疏)『사례편람(四禮便覽)』
  • 『상례비요(喪禮備要)』
  • 『상변통고(常變通考)』
  • 『오복각의(五服各義)』
  • 『오복연혁도(五服沿革圖)』
  • 『의례(儀禮)』
  • 『주례(周禮)』
  • 김두헌, 『한국가족제도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69.
  • 김두헌, 「오복제도의 연구」, 『진단학보』5, 1936.
  • 김시황, 「상례 오복제도 연구」, 『한국의 철학』22, 1994.
  • 노명호, 「고려의 오복친과 친족관계법제」, 『한국사연구』33, 1981.
  • 이필상, 「고려시대 복제의 연구」, 『한국사론』2, 1975.
  • 최재석, 「조선시대의 유복친-경국대전과 사례편람의 비교분석-」, 『사학연구』36, 1983.
  • 황원구, 「기해복제논안시말」, 『연세논총–사회과학편-』2,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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