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기은(別祈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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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왕실의 안정과 평안을 위하여 명산대천(名山大川)에서 지내던 산신제(山神祭)의 하나.

개설

별기은(別祈恩)은 고려 이전인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계속된 행사이다. 별기은은 조선초기에 이르러 요사(謠祀)나 잡사(雜祀)라고 조정에서 금지령을 내렸으나, 중종(中宗) 때까지 잔존하였다.

내용 및 특징

별기은에 관한 기록은 고려시대 『고려사』에서부터 보이나, 그 근원은 고대의 무속 신앙이나 산신 신앙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별기은은 주로 나라의 제(祭)로 명산대천에서 호국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명산대천에서 지냈는데, 태조 때에는 덕적·감악·개성 대정 등의 세 곳에서 행해졌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이와 같이 세 곳으로 한정하지 않고, 고양·장단고개·송악 등지에서도 거행되었다.

별기은은 주로 명산에 신사(神祠)와 무당을 가졌는데, 그 사(祀)의 특색은 가무(歌舞)를 신(神)에게 흠향하는 것과 공수를 하는 것이다. 특히, 무가(巫歌)뿐만 아니라 노상(路上)의 고취(鼓吹)도 섞여 있었다. 이같이 별기은이 무가로 행하였기 때문에, 태종 때는 음사라고 칭하기도 하였지만, 별기은은 그 당시의 국고를 비울 정도로 크게 행해졌다.

별기은과 같은 기은제(祈恩祭)는 조선시대 국가의 행사에 포함되었으나, 오늘날 가제(家祭)는 남아있고 산신굿·도당굿 같은 동제(洞祭)는 매우 희귀해졌으며, 국제(國祭)는 아예 사라졌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국가적 재난 극복을 위한 기양 의례로 사용되었던 별기은은 16세기까지 성수청(星宿廳)의 주관 하에 행해지던 공식적인 국가 의례였을 뿐만 아니라 내간(內間)의 내지(內旨)에 따라 거행되었던 내행 의례이기도 하였다. 요컨대 별기은은 조선의 공식 종교의 공적 지위로서 명산대천에서 거행하였던 무속의 대표적인 산신 의례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이혜구, 『한국음악서설』,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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