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총(發塚)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무덤을 파헤치거나 시신을 훼기한 자의 죄 및 그 처벌 규정.

내용

『대명률』 「형률(刑律)」 도적편(盜賊編)의 발총조(發塚條)에는 무덤을 파거나 시신(屍身)을 훼기(毁棄)한 자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율문에 따르면 타인의 무덤을 판 경우에 관곽(棺槨)이 드러나면 장(杖) 100·유(流) 3,000리에 처하고 시체까지 보이게 하면 교형(絞刑)에 처하며, 관곽(棺槨)이 드러나지 않은 경우에는 장(杖) 100·도(徒) 3년에 처한다. 그리고 비유(卑幼)가 존장(尊長)의 시체를 드러나게 한 경우에는 참형(斬刑)에 처하도록 했다.

타인의 시신(屍身)을 훼손하거나 물속에 버린 경우에는 장(杖) 100·유(流) 3,000리였으며, 시마(緦麻) 이상 존장(尊長)의 시신이라면 참형(斬刑)에 처하도록 했다.

1431년(세종 13)에 사노(私奴) 두언(豆彦)이라는 자가 남의 무덤을 파서 재물을 훔친 것에 대해, 형조(刑曹)에서 교형을 적용하여 그에 따라 처벌한 사례가 있다.

이처럼 재물을 훔칠 목적으로 무덤을 판 사례도 있었지만, 『대명률』의 처벌 규정은 분묘(墳墓)를 만드는 유교적 상장례(喪葬禮)와 관계된 것이었다. 유교적 예제(禮制)가 아직 확립되지 않았던 조선초기에는 부모의 시신(屍身)을 매장(埋葬)하지 않고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성종 연간에는 승려들의 말에 따라 부모의 시신을 화장(火葬)하거나 훼기(毁棄)하는 사안들이 발생하자, 국가에서는 이러한 풍속(風俗)을 우려하여 이를 엄격히 처벌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1474년(성종 5)에는 예조(禮曹)의 건의에 따라 시체를 훼기한 자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유도한 자 및 적발하지 못한 관리까지 처벌하게 하였다. 또한 같은 해에 변방(邊方)의 백성들이 부모가 죽으면 장사(葬事)지내지 않고 바위 구렁에 버려두는 것이 문제가 되자, 이후부터 『대명률』에 따라서 엄중히 논죄하도록 했다.

용례

禮曹啓 今承傳敎 輪對者有言 近來愚民 或爲妖僧誑誘 或愛惜葬需 忍以親屍投火燒之 甚者身有疾病 乃以死者爲祟 至發塜 燒屍 傷風敗敎 一至於此 願痛禁之 其申明科禁 以絶其風 臣等據此參詳大明律 喪葬條 其從尊長遺言 將屍燒火者 杖一百 發塚條 若毁棄緦麻以上尊長死屍者子孫毁棄祖父母父母死屍者斬 今也無識之徒 或怵於邪說 或愛惜其財 投諸火焰 以毁親屍 人所不忍爲也 今後如有犯者 請依律論斷 其誑誘者與同罪 不能檢擧官吏及管領里正切隣亦重論 從之(『성종실록』 5년 4월 25일)

참고문헌

  •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 『대명률강해(大明律講解)』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