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朴楣)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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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박미 |
한글표제 | 박미 |
한자표제 | 朴楣 |
분야 | 정치·행정가/관료/문신 |
유형 | 인물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전기 |
왕대 | 세조~성종 |
집필자 | 박은화 |
자 | 자첨(子瞻) |
호 | 존성재(存誠齋) |
시호 | 대민(戴敏) |
출신 | 양반 |
성별 | 남자 |
출생 | 1433년(세종 15) |
사망 | 1491년(성종 22) |
본관 | 밀양(密陽) |
주거지 | 서울 |
묘소소재지 | (현)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
증조부 | 박강생(朴剛生): 찬성사(贊成事) |
조부 | 박절문(朴切問): 교서관 정자(校書館正字) |
부 | 박중손(朴仲孫): 밀산군(密山君) |
모_외조 | 남평문씨(南平文氏): 공조정랑(工曹正郞) 문승조(文承祚)의 딸 |
형제 | (형)박전(朴栴) (동생)박건(朴楗) |
처_장인 | 진산강씨(晉山姜氏):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강석덕(姜碩德)의 딸 |
자녀 | (1자)박의영(朴義榮) (2자)박광영(朴光榮) (3자)박증영(朴增榮) (4자)박소영(朴召榮) (5자)박안영(朴安榮) (6자)박수영(朴守榮)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박미(朴楣) |
총론
[1433년(세종 15)~1491년(성종 22) = 59세]. 조선 전기 세조~성종 때 활동한 문신. 행직(行職)은 사간원(司諫院)대사간(大司諫)이다.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존성재(存誠齋)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증조부는 찬성사(贊成事)박강생(朴剛生)이고, 조부는 교서관(校書館)정자(正字)박절문(朴切問)이다. 아버지는 밀산군(密山君)박중손(朴仲孫)이며, 어머니 남평문씨(南平文氏)는 공조 정랑(正郞)문승조(文承祚)의 딸이다. 형은 박전(朴栴)이고, 동생은 좌찬성(左贊成)박건(朴楗)이다. 부인 진산강씨(晉山姜氏)는 돈녕부(敦寧府)지사(知事)강석덕(姜碩德)의 딸이다.
세조~성종 시대 활동
1451년(문종 1) 사마시(司馬試)에 생원(生員)으로 합격하였다. 음보(蔭補)로 직장(直長)에 임명되어 재직하던 중, 1458년(세조 4) 알성시(謁聖試)문과(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1459년(세조 5) 2월 사간원(司諫院)정언(正言)이 되고, 그 해 8월 사간원 좌정언(左正言)이 되었다. 그 뒤 사섬시(司贍寺)부정(副正)·군자감(軍資監)정(正)·이천부사(利川府使)·광주목사(光州牧使)·선농(先農) 전사관(典祀官) 등을 역임하고, 1489년(성종 20) 5월 통정대부(通政大夫) 좌부승지(左副承旨)가 되었으며, 이어서 좌승지·예조 참의(參議)·대사간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491년(성종 22) 세상을 떠나니 향년 59세이다. 『세조실록(世祖實錄)』과 『여지승람(輿地勝覽)』 편찬에 참여하였고, 시문(詩文)이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전한다.
시호와 묘소
시호는 대민(戴敏)이다. 묘소는 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두응촌에 있다.
참고문헌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