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正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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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관(弘文館)·승문원(承文院)·교서관(校書館)의 정9품 관원.

개설

정자(正字)는 조선시대 1392년(태조 1)에 세자관속(世子官屬) 정7품 관원으로 처음 나타난다. 정자는 홍문관·승문원·교서관에 설치된 관직으로, 홍문관의 정자는 책[典籍]이나 문장의 교정을 그 임무로 삼았다. 승문원의 정자는 외교문서를, 교서관의 정자는 도서 출판에 관한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1456년(세조 2) 집현전을 폐지할 때 함께 사라졌다가 1463년(세조 9) 11월에 홍문관을 신설할 때 겸관 2명으로 증원되었고, 1478년(성종 9)에 녹관(祿官)이 되었다.

담당 직무

홍문관이 문한(文翰)을 담당하며, 왕의 고문에 대비하는 직무를 띤 관청이기 때문에 정자도 홍문관의 자문, 교육, 문한에 일익을 담당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정9품 관원이었기 때문에 주도적이기 보다는 보조 역할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경연관으로 전경(典經), 즉 경연에 필요한 책을 관장하는 정9품 관직이 있는데, 정자가 이를 담당했다. 전경은 성종 때 홍문관이 설치된 뒤 경서(經書)의 보관과 출납 관리를 맡았던 관직이기 때문에 정자가 했던 소임을 알 수 있다.

정자는 홍문관뿐만 아니라 승문원·교서관에도 있는 관직이었다. 경연관인 전경 역할을 했다는 것에 더하여, 교서관은 출판을 담당하는 관서였고, 승문원은 외교문서를 담당하는 관서였으므로, 정자라는 이름만 같았던 것이 아니라 직무도 서로 유사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정자는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 편찬에도 참여했다. 특히 홍문관 정자는 다른 홍문관 관원들과 함께 춘추관 기사관(記事官)을 겸직하면서 직접 기록을 작성하는 사관(史官)의 직무를 수행했다. 실록청(實錄廳)이 설치되어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게 되면 실록청 편찬관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변천

정자는 1392년에 세자관속을 정하면서 정7품 관원으로 좌정자(左正字) 1명, 우정자(右正字) 1명을 두면서 시작되었다. 1399년(정종 1)에는 집현전을 설치하면서 집현전의 7품관 이하가 설서·정자를 겸직하였다. 1420년(세종 2)에 정9품 녹관이 되었다. 1456년에는 집현전을 폐지하면서 정자도 없어졌다가 1463년 11월에 홍문관을 신설할 때 겸관 2명으로 증원되었다. 1478년에는 녹관이 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귀천 원유한 교수 정년 기념 논총 간행위원회 편, 『귀천 원유한 교수 정년 기념 논총』 상·하, 혜안, 2000.
  • 박홍갑, 「조선 초기 승문원의 성립과 그 기능」, 『사학연구』 62, 2001.
  • 오항녕, 「조선초기 문한관서의 정비와 사관제도」, 『한국사학보』 7, 1999.
  • 최인기, 「조선초기 문원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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