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맹지(朴孟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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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 단종~성종 때 활동한 문신. 행직(行職)은 삼가 현감(三嘉縣監)이다. 호는 춘당(春塘)이고,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아버지는 박안경(朴安敬)이고, 어머니는 함양오씨(咸陽吳氏)오중권(吳仲勸)의 딸이다. 형제는 교리(校理)를 지낸 박익지(朴益智)가 있다.

단종~성종 시대 활동

1453년(단종 1년) 사마시(司馬試)에 생원(生員)으로 합격하였다. 1454년(단종 2) 알성시(謁聖試)문과(文科)에 정과(丁科)로 급제하였고, 1455년(세조 1) 12월 권지학유(權知學諭)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二等)에 녹훈되어 1자급이 더하여졌다. 그 뒤 세조가 여러 차례 영직으로 탁용하려 하였으나 관계를 떠나 함양(咸陽)에 은거하여 성리학(性理學)에 몰두하였다.

세조가 돌아가자 벼슬길에 나와, 1474년(성종 5) 병마평사(兵馬評事)가 되었다. 이때 영안북도 절도사(永安北道節度使)인 어유소(魚有沼)의 명으로 임금에게 대전(大箭)과 매와 사냥개를 바쳤다. 이어 임금에게 육진(六鎭) 개척 이후 야인(野人)들이 서울에 올라오는 운(運)이 본래 정수(定數)가 없으므로 연로(沿路) 관참(官站)에서 그 폐단을 견딜 수 없이 크다고 아뢰었다. 곧 야인들이 내조할 때 1년 동안의 운(運)의 횟수와 한 번 운이 이동할 때의 숫자를 정할 것을 건의하여 이를 시행하게 함으로써 역로(歷路)의 관대(館待)하는 폐단을 없게 하였던 것이다. 1475년(성종 6) 1월 삼가현감(三嘉縣監)이 되어 백성을 무휼(撫恤)하는데 힘썼다. 그 뒤 훈도(訓導)·교리(校理)·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상훈과 배향

1455년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二等)에 녹훈되어 1자급이 더해졌다. 함양(咸陽)의 구천향현사(龜川鄕賢祠)에 배향되었다. 부인은 보성선씨(寶城宣氏)이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함양읍지(咸陽邑誌)』